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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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와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은 되레 줄고 있어서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전력난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주요 공장들은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공급난은 또다시 글로벌 인플레이션 강도를 높이고 시중금리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에너지발(發) 악순환이 지속되면 경기 회복이 더뎌져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서로 가격 끌어올린 원유와 천연가스

원유 수요 느는데 공급 위축 지속…천연가스 값도 7년 만에 최고
국제 유가가 3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한 첫 번째 이유로는 수요 증가가 꼽힌다.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원유 수요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9월 월간 보고서에서 3분기에 여행과 사람 이동이 늘어나 원유 수요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내년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 1억80만 배럴로 2019년 글로벌 수요량(1억30만 배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OPEC은 내년 하반기에나 2019년 수요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시점을 상반기로 앞당긴 것이다.

이에 비해 원유 공급은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멕시코만 지역이다. 멕시코만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미국 전체 생산량의 17%를 차지한다. 원유 핵심 공급원인 이곳은 지난달 풍속 기준 4등급이었던 허리케인 아이다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이 지역의 원유 생산량은 이전보다 91%(약 165만 배럴) 감소했다. 여전히 멕시코만의 원유 생산 설비 24%가 가동을 멈춘 상태다.

멕시코만엔 천연가스 생산 시설도 몰려 있다. 아이다 여파로 한때 이 지역의 천연가스 생산 시설 중 84.9%가 문을 닫았다. 여기에 올해 4월까지 이상 기후로 추운 날씨가 계속됐고 유럽 내 풍력발전량이 감소해 천연가스 수요가 늘었다. 이로 인해 천연가스 가격이 올랐고 이는 다시 원유값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겨울 난방원인 천연가스가 모자라면 석유를 대신 찾기 때문이다.

향후 겨울철 한파가 닥치면 미국보다 유럽이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지 않고 있어서다.

“유가 90달러 넘어 100달러 간다”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전력난이 심해지고 있다. 지난 27일 기준 중국 내 22개 성 가운데 16개 성에서 전력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하는 남동부 제조업 벨트 광둥·장쑤·저장성이 단전에 나서고 공장 가동 중단 명령을 내렸다. 장쑤성 장자강시에 있는 포스코 스테인리스 공장도 21일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애플과 테슬라 등도 타격을 받았다. 중국에 있는 핵심 협력사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협력사인 대만 유니마이크론과 폭스콘 계열사인 이성정밀도 중국 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에너지 부족이 다시 다른 물품의 공급 부족을 야기하게 되는 셈이다.

공급 부족 문제는 단기간 내 풀리지 않아 국제 유가는 계속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6일(현지시간) 투자 메모를 통해 올해 말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77달러에서 87달러로 10달러 높였다. 브렌트유 전망치도 배럴당 80달러에서 9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국제 유가 100달러 돌파를 예상했다. 이 은행은 지난 13일 투자 보고서에서 “겨울 한파가 예상보다 강하면 내년 초께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은행은 당초 내년 중반은 돼야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봤는데 그 시기를 6개월가량 앞당긴 것이다.

유가 급등 우려가 커지면서 산유국들이 증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OPEC 및 기타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가 다음달 4일 각료회의를 열어 생산량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외환 중개업체인 오안다의 크레이그 엘람 선임 애널리스트는 “유가 상승 모멘텀이 지속되면 OPEC+가 증산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