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기축통화인 달러로부터 이탈하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달 열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부총리 겸 에너지 장관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CNBC 기자에게 “미국의 제재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원유를 수출할 때 달러표시 계약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원유 수출 시 달러를 받지 않겠다는 압박이다.

이날 안톤 실루아노프 러 재무장관도 같은 행사에서 "미국 제재에 대한 보복조치로 국부펀드(NWF)에서 미국 달러 자산을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부펀드는 1190억달러 규모(약 133조182억원)로, 이 가운데 달러자산은 35%(약 415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국부펀드에서 달러자산 대신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 금 자산 등으로 나눠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재조정 조치가 이뤄질 경우 러시아 국부펀드의 자산구성은 유로화 40%, 위안화 30%, 금 20%, 엔화 및 파운드화가 각각 5%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와 크리미아 반도 분쟁을 벌인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제국가들로부터 제재 압력을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는 최근 잇따른 자국 민간기업에 대한 사이버공격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며 보복조치를 시사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은 "오는 16일 바이든과 푸틴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의 신경전과 맞대응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탈달러 움직임은 2019년부터 계속됐다. 노바텍, 로즈네프트 등 러시아 자원개발기업들은 2019년 10월부터 유로화 결제 기반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3월 푸틴의 최측근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에서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달러자산 보유를 줄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도 탈달러화 행렬에 앞장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관리하는 디지털위안화 사용 실험을 벌여왔으며 지난 1일부터 사용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국제통화 시스템에서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약화시키려는 구상이다. 골드만삭스 등은 디지털위안화가 향후 10년 안에 전세계 소비자 결제의 15%가량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