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정보기술(IT)기업들이 세계 투자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동남아 최대 차량호출업체인 그랩이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와의 합병 절차에서 수백억달러의 가치를 인정받는 등 “투자시장에서 외면받던 동남아 인터넷기업의 데뷔 잔치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랩은 이번주 스팩 합병을 통한 상장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스팩은 상장 지분 사모투자(PIPE) 방식을 활용해서도 부족한 기업 인수자금을 모을 수 있는데, 그랩 PIPE에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티로우프라이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과정에서 그랩은 최소 340억달러(약 38조2900억원)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스팩 합병 상장이다. 2012년 말레이시아 차량 호출 앱으로 설립된 그랩은 2018년 우버의 동남아 사업부문을 인수하며 단숨에 동남아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인도네시아에 기반을 둔 동남아 1위 여행예약업체인 트래블로카도 스팩 상장을 추진 중이다. 페이팔, 팰런티어테크놀로지 등에 초기 투자한 틸캐피털이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브리지타운 스팩을 통할 예정이다. 트래블로카의 기업가치는 50억달러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두 기업의 스팩 상장에 대해 “그랩의 경쟁사 고젝과 전자상거래기업 토코페디아, 온라인 부동산 중개업체 프로퍼티구루 등 올해 동남아 스타트업의 기업공개(IPO)가 시작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이후 모바일 시대에 맞춰 세계 투자자들이 동남아 지역의 기업 지형을 장기간 지배해온 금융회사와 대기업보다 동남아 IT기업의 영향력에 관심을 두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게임·핀테크·전자상거래기업 씨가 2017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기 전까지 동남아 국가들은 유력 테크기업을 배출하지 못했다. 블룸버그는 “시장 참여자들은 씨로 대표되는 동남아 기업 명단을 정비하면서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장 테크기업을 주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투자운용사 캐세이캐피털의 한 관계자는 “과거 선진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며 “지금부터는 동남아의 황금기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