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남자'로 69년 보내
"윈저성서 평화롭게 세상 떠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버킹엄궁은 이날 “필립공이 오늘 오전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며 “왕실은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필립공은 지난 2월 코로나19와 관계 없는 다른 감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어 지난달 1일 세인트바살러뮤 병원으로 옮겨져 심장 수술을 받았다. 같은 달 17일 퇴원해 윈저성으로 복귀했지만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드루 왕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와 덴마크 양국에서 모두 왕위 승계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큰아버지가 군부에 그리스 왕좌를 빼앗기면서 필립공의 가족도 그리스를 떠나야 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코틀랜드 등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 누나들과 뿔뿔이 흩어졌다.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인연은 1939년 7월 다트머스 왕립해군학교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따라온 13세의 엘리자베스가 18세 필립공에게 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 후 필립공이 영국 해군에 입대했지만 이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키웠고, 1947년 11월 20일 결혼식을 치렀다. 필립공은 이때만 해도 왕의 사위일 뿐이었지만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에 즉위하면서 신분이 바뀌었다.

그는 69년간 여왕의 남편으로서 곁을 지키며 외조했다.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2017년 은퇴할 때까지 성실하게 여왕의 공식 행사를 따라 다니고 수백 개 자선단체를 지원했다. 다재다능한 스포츠맨으로 폴로 등 말을 타며 하는 운동을 즐겼고, 항공기 조종 경력도 상당하다.

필립공은 여왕과의 사이에 찰스 왕세자,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손 등 손주 8명에 여러 증손주를 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필립공의 죽음은 큰 슬픔”이라며 “그의 비범한 삶을 기리며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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