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방관하는 틈을 타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활용해 ‘현대판 실크로드’를 깔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중국이 적극적으로 백신 외교에 나서면서 소프트파워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지금까지 60여 개국이 중국산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 중 3분의 1이 이미 접종에 들어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달 중순까지 중국산 백신 4600만 회분이 수출됐다. 중국 내 접종분보다 수출량이 더 많다.

중국 정부와 시노팜, 시노백, 칸시노 등 중국 제약사들은 개발도상국에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기 위한 밑작업을 진작부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산 백신 공급의 허브 역할을 하는 에티오피아의 경우 공항 화물터미널에 축구장만 한 저온저장시설이 마련돼 있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의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핵무기 구매보다 어렵다”는 말이 시사하듯 현재 국제 외교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백신이다.

중국이 성공적으로 백신 외교를 벌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등 선진국의 ‘백신 민족주의’에 있다는 지적이다. 선진국들이 백신을 입도선매해 자국민 챙기기에만 열중하는 사이 중국이 파고들 틈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산 백신 접종자에게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는 오히려 중국의 대외 신뢰도를 훼손하는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와 인도도 적극적으로 백신 외교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은 동유럽, 남미 등지에 진출했다. 코로나19 백신의 주요 생산기지인 인도는 인접국인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 무상 공급했다. 중국과 국경 분쟁을 벌여온 인도가 백신을 활용해 인접국을 자국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