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개인투자자들의 ‘사재기 운동’이 국제 은 시장에선 영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최근 공매도 헤지펀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 공격을 주도한 미국 온라인커뮤니티 레딧이 은을 매수 타겟으로 지목했지만 며칠만에 가격이 다시 하락세다. 증시와 상품시장은 성격이 크게 달라 이들의 ‘은 시장 총공격’이 별 효과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 상품시장에서 은 3월 인도분은 트로이온스(약 31.1g)당 28.53달러에 거래됐다. 전 거래일 대비 약 3% 내렸다. 은은 전날엔 13% 급등해 8년만에 최고가인 30.13달러에 손바뀜됐다.
"상품시장은 증시가 아냐"…힘 못쓰는 개미들 '은시장 총공격' [원자재포커스]
은은 지난달 27일 레딧 내 주식토론방 격인 월스트리트베츠에서 매수 의견이 여럿 나온 이후 가격이 급등했다. 레딧 이용자들은 JP모간체이스 등이 은 시세를 조작해 가격을 억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은을 대거 사들여 시장 은 공급량을 동나게 하면 ‘기성 금융세력’에 손해를 입힐 수 있다는게 이들의 계획이다. 은에도 ‘쇼트 스퀴즈’를 낼 수 있다는 이른바 ‘실버스퀴즈’ 운동이다.

“은, 제2의 게임스톱 될 가능성 낮다”

반면 전문가들은 은이 ‘제2의 게임스톱’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한다. 미국 뉴욕증시의 개별 주식 주가를 올리는 것과 세계 상품시장에서 주요 품목 가격을 올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는 설명이다. 상품시장 고유의 성격도 증시와 다르다.

△롱·숏간 ‘제로섬게임’
전문가들은 이번 레딧의 움직임엔 출발점부터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은 시장에선 개인투자자들의 집중 공격 목표가 될 만한 대규모 단기 공매도가 없어서다. 상품거래기업 파라곤글로벌마켓의 마이클 맥두걸 본부장은 “거의 모든 상품시장은 증시와 달리 주요 주체가 매수·매도 포지션을 같이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뉴욕 선물시장에서 매도 포지션을 잡았다면 런던 시장에선 비슷한 규모로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가가 우상향하면 대부분이 돈을 버는 주식과 달리 상품시장은 매수·매도 포지션간 이득의 총합이 0인 ‘제로섬’ 구조인 것도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여기에다 레딧의 사재기운동 전부터 금융기관은 매수 포지션을 늘리고 있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2019년 중반 이후 은에 대해 순매수 포지션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지난달 26일까지 한 주간 기준으로는 금융기관의 순매수 포지션이 3주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 아니라 수요·공급에 의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주요 동력 중 하나인 증시와 달리, 상품시장은 수요·공급 원칙으로 돌아간다는 점도 차이다. 이때문에 한정된 은 현물 공급량이 큰 변수가 된다. 바트 멜렉 TD증권 수석상품전략가는 “은 시장도 투기적인 측면에서 단기 흐름을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수요와 공급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레딧이 목표로 하는 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공격하는 것도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각 ETF는 규모가 늘어나면서 거래량을 뒷받침하기 위한 은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에는 시간이 걸리고, 이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집중 공격 모멘텀을 꺼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별주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시장
‘공매도 대전’ 이전인 이달 중순 게임스톱은 시가총액이 14억달러 수준이었다. 반면 런던 은시장 금고에 보관된 은 양은 16억5000만 트로이온스에 달한다. 금액가치로 따지면 약 438억9000만달러 수준이다.

은 시장은 거래상, 광산업체, 헤지펀드, 실수요 제조기업 등 얽힌 주체도 많다. 작년엔 세계 은의 28%가 전자제품에 쓰였다. 태양광 패널 등에도 쓰인다. 이 사이에서 소매 개인투자자가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런던 OTC시장에서만 하루 거래되는 은이 5억 트로이온스에 달한다. 이중 3분의2가 현물계약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은 규모는 개인투자자가 은 바나 은화(코인)을 대량 구매하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한 중개상은 “개인투자자들이 은을 매점매석하겠다는 것은 바닷물을 말려버리겠다는 얘기와 다를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개미들도 ‘이제 그만할까’

개인투자자들의 움직임도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이날 레딧 등엔 “은값을 올려봐야 헤지펀드만 이익이다”라며 “실버스퀴즈를 그만두라”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레딧 개인투자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시타델이 은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 실버트러스트의 주요 보유 주체라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이런 움직임이 더 거세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시타델은 ‘게임스톱 공매도 대전’을 주도해 상당한 손해를 본 멜빈캐피털에 대규모 현금을 투입했다. 시타델은 아이셰어 실버트러스트를 5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으로는 약 600만주(지분 0.93%)를 보유했다.

이날 COMEX를 운영하는 상품거래를 주관하는 CME그룹이 은 선물 마진을 1계약당 1만4000달러에서 1만6500달러로 올린 것도 매수세를 일부 꺾었다. 선물 마진은 상품 거래에 필요한 보증금 격인 금액이다. COMEX는 “시장 변동성을 검토한 뒤 적절한 담보 범위를 보장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개인투자자 등 소규모 시장주체를 밀어낼 수 있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제임스 스틸 HSBC 귀금속부문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번주 이후 혹은 더 빠른 시일 내에 은 시장에 새로 진입한 이들이 지쳐 은 보유를 청산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일어날 것이니 주의하라”고 메모를 통해 밝혔다. 워런 패터슨 ING은행 NV 상품전략실장은 “은의 최근 상승세는 펀더멘털과 관련이 없었다”며 “당분간 변동성이 커지겠지만 결국엔 가격이 지금보다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