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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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를 개편해야 한다는 국제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국제 무역 체제는 매우 고르지 못한 관세와 일부 국가에만 예외를 두는 규칙,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규정하지만 결국에는 자국 보호주의를 의미하는 무역 협정 등으로 변질됐다. 동시에 WTO의 분쟁 조정 제도는 종종 기본 규칙과는 다른 법리를 만들어 내는 데 이용됐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2차 세계대전 이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해 새로운 세계 무역 체제가 수립됐다. 근본적으로는 차별금지 원칙에 기초해 회원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도록 요구하는 규칙이 제정된 것이다.

다만 모든 국가가 고르게 자유화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서유럽, 일본은 1990년대 초까지 평균 관세율이 한 자릿수로 낮았다. 개발도상국에는 훨씬 더 높은 관세율이 부과되는 대신 특정 무역 의무를 완전히 면제해 주는 특별 대우가 제공됐다. 개도국은 관세율이 점점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렇게 1947년 GATT 체결부터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까지 여덟 차례의 다자간 무역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1995년 WTO 설립 이후부터였다. 무역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보다는 소송으로 눈을 돌리는 국가가 늘었다. WTO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뉘는 분쟁 해결 시스템을 운영한다. 우선 전문가 패널이 한 국가에 대해 WTO 규정 위반 여부를 조사해 첫 번째 평가를 내린다. 해당 국가는 여기에서 패소할 경우 상소기구에 사건을 제소할 수 있다. 하지만 상소기구는 사실관계를 바로잡기보다는 법적인 오류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상소기구의 비민주적이고 과민한 성향은 세계무역체제와 WTO에 제소된 모든 사건의 4분의 1이 연루된 미국에 피해를 줬다. 미국이 이런 소송에서 종종 승소하기도 했지만 피해를 본 경우가 더 많았다. 상소기구는 WTO 규정 본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의무를 만들었고, 미국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법을 해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주요 경쟁국인 중국은 상소기구를 칼과 방패 둘 다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중국은 비(非)시장적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 제도를 능숙하게 이용했다. 이처럼 각국이 협상보다는 소송을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협상 동기는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WTO 설립 이후 성공적인 다국적 관세 협상이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WTO는 시장개혁과 최혜국 대우의 원칙을 앞세움으로써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첫째, WTO 회원국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본 관세율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출발점은 선진국의 평균 관세에 근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유무역협정의 영토 확장을 끝내야 한다. 다만 유럽연합(EU) 내에서 무역을 지배하는 국가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등 인접 국가 간 지역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합의는 제외한다. WTO 회원국은 무조건적이면서도 가장 유리한 대우를 서로에게 확대하도록 요구돼야 한다.

셋째, 경제 규모가 큰 국가는 특별 대우와 차등 대우를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WTO의 규칙이 진정으로 모두가 열망해야 할 세계 수준의 기준을 구현한다면 중국과 인도 등은 미국, EU, 일본에 적용되는 동일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넷째, WTO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에서 흘러나오는 경제 왜곡을 막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세워야 한다. 비시장적인 관행이 세계 근로자와 기업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국제 무역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물론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WTO의 분쟁조정 시스템은 완전히 다시 설계돼야 한다. 현재의 2단계 시스템은 상업적인 중재와 비슷하게 1단계짜리 절차로 바뀌어야 한다. 임시 법정은 특정한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일회성 패널의 판결은 분쟁 당사자에게만 적용돼야 하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유 무역 법제의 일부가 돼서는 안 된다. 패소한 당사자에게 사법기관에 자동 항소를 주기보다는 WTO 회원국이 잘못된 패널 의견은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미국 정부는 같은 방향을 추구하는 국가들과 함께 동질감을 갖고 기꺼이 협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WTO 사무총장 선출은 세계 무역 시스템의 미래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은 충분히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참여자가 될 준비가 돼 있다.

원제=How to Set World Trade Straight
정리=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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