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장기화로 경제난 가중
중남미 '고육지책' 연금 활용
중남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난이 심화하자 긴급 대책으로 연금 중도 인출을 허용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칠레 정부는 30일(현지시간) 연금 중도 인출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산티아고 연금기금관리국(AFP)에는 이른 아침부터 중도 인출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을 섰다. AFP는 첫날에만 300만 건 이상의 신청이 들어왔다고 발표했다. 전체 연금 가입자(1100만 명)의 27.3%에 해당하는 규모다. AFP 웹사이트는 온라인으로 신청하려는 접속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여러 차례 멈췄다.

지난주 칠레 의회는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대책으로 연금의 최대 10%를 미리 찾아 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연금 재정 악화를 우려해 반대했지만 국민들은 길거리 시위를 벌이며 법안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지난 4월 시작된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경제난이 급속도로 심화한 탓이다. 5월에는 일자리를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들이 “먹을 게 없다”며 곳곳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FE통신은 연금 가입자들이 모두 10%를 채워 인출한다면 150억~200억달러가 빠져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시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칠레 국민 10명 중 9명이 ‘연금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 이 돈을 생활비로 쓸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연금 재정이 허약해져 장기적으로는 수급액이 적어지면서 노인 빈곤 문제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가입자에게 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금 운용사들이 보유 주식을 매각하면 증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칠레에 앞서 페루도 4월 연금 가입자들이 최대 25%를 미리 인출할 수 있도록 했다. 콜롬비아에서도 연금 10% 인출 허용 법안이 발의돼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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