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률 세계 최고 일본의 '비데경제학'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세계적인 화장지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비데를 둘러싼 나라별 문화 차이도 화제가 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화장지를 서로 차지하려는 손님들이 난투극을 벌였고, 미국에서는 911(우리나라의 119) 긴급구조서비스에 화장지를 구하지 못한 시민들의 구조요청 전화가 빗발치자 경찰당국이 '화장지가 떨어졌다고 911에 전화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비데 보급률이 10%도 안되는 서양에서는 화장지가 없으면 용변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11일 소개했다.

화장지 품귀현상을 이용해 매출을 크게 늘린 기업도 있다. 미국의 대형 욕실 전문기업은 '비데를 쓰면 연간 250통의 두루마리 화장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광고를 내새워 매출을 두 배로 늘렸다. 미국인의 연간 두루마리 사용량은 91통으로 세계 최고 수준. 5인 가정이라면 1년에 455통을 쓰는 셈이니 250통이면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화장지 사용량이 비데 보급률에 반비례하는 건 비데의 건조기능만 있으면 화장지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서양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의 비데습관 대로라면 가정의 비데보급률이 80.4%(2019년말)로 세계 최고인 일본에서는 화장지가 절멸위기에 처해야 한다. 실제로 일본 가정에 본격적으로 비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 제지업계에서는 '화장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가정에 비데가 보급된 오늘날에도 일본인의 화장지 사용량에는 변화가 없다. 일본 비데 제품의 70%에 건조 기능이 달려 있지만 일본인들은 그다지 쓰기 않기 때문이다. 대신 화장지를 써서 물기를 빨리 닦아내는 쪽을 선호한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본 가정의 비데보급률(요미우리신문)
일본 가정의 비데보급률(요미우리신문)
일본인 1명이 1년 동안 사용하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평균 59통. 대도시를 제외하면 비데가 거의 보급돼 있지 않은 중국(31통), 브라질(24통)의 두 배다. 비데와 화장지를 함께 쓰기 때문에 일본 가정은 용변을 해결하는데 연간 8100엔(약 9만1083원)을 들이고 있다. 비데 1대당 전기료 4500엔에 두루마리 화장지 구매액 3600엔을 합한 금액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비데보급률에도 불구하고 '집에 비데가 있는데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일본인도 23%에 달한다. 여성과 젊은 층일수록 비율이 높다. 가족끼리만 쓰는 비데라 하더라도 온수가 나오는 노즐 부분이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서 처음 비데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은 1967년의 릭실. 하지만 일반 가정에 비데가 보급된 계기는 1982년 토토의 '엉덩이인들 씻고 싶어 한답니다'라는 광고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닦지 말고 씻으세요'라는 광고가 비데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사례와 비슷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