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둔 미군 감축을 공식화한 미국이 독일서 빼내기로 한 9000명 중 일부를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에 배치할 가능성을 강력 시사했다. 주독(駐獨) 미군 감축이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의 ‘미군 철수’가 아니라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전력 재배치’ 차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싱크탱크 독일마셜기금이 주최한 화상 대담에서 주독 미군 감축 계획과 관련해 “미국은 약 2년 반 전에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에 배치된 미군의 재배치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언급하며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을) 적절히 배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독일에서 감축한 미군 일부를 아시아 지역에 배치할 수 있다고 거론한 것이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2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미국은 왜 독일에서 미군을 움직이나’ 칼럼에서 독일에서 감축한 병력 중 수천 명을 괌, 하와이, 알래스카, 일본, 호주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고 또 다른 수천 명은 유럽의 다른 나라에 둘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독일 주둔 미군을 3만40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줄일 방침이다. 독일에서 줄어드는 9000명 중 일부는 폴란드로 이동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미 언론은 폴란드로 이동하는 병력은 1000명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로 배치되는 미군이 얼마나 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팽창을 의식해 아시아에서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한 뒤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방침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조약에서 빠져 있는 중국과의 중거리 미사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중국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며 군사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에 저항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 맞서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전 세계”라고 말했다. 이어 미군 재배치와 함께 각 국이 자국의 국방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국방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부자 나라’의 방위비 분담을 늘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