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기업들이 마이너스 성장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전염병 우려에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으면서 매출이 줄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잘나가는 기업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앞당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혁신하는 곳들이다.
'셧다운 없는 공장' 주도 日 키엔스…소프트뱅크 넘다
‘포스트 코로나’ 키워드는 자동화

경영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산업에서 디지털·자동화가 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대면·비접촉을 해결하기 위해 생산 자동화가 필수다. 각국 정부가 추진 중인 ‘리쇼어링’ 정책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은 주요 물자 생산 기반을 자국에 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문제는 인건비다. 여러 국가와 기업들은 인건비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팩토리’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를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일본 키엔스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도쿄증시에서 시가총액 6위였지만 이달 들어 도요타자동차(22조9600억엔)에 이어 2위(11조2500억엔)로 올라섰다. 소프트뱅크(10조8700억엔), NTT도코모(9조5600억엔)보다 기업가치가 높아졌다. 키엔스 주가는 1월 초 대비 18.6% 올랐다. 시총 상위 100개 종목으로 이뤄진 토픽스(TOPIX)지수가 같은 기간 7.2% 하락한 것과 대조된다.

키엔스는 1974년 중소 제조기업으로 출범했다. 최근 몸집을 키운 건 생산 자동화·스마트 팩토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서다. 키엔스는 이 분야 핵심인 센서와 측정기, 비즈니스 정보 분석 장비, 화상 처리 기기, 전자현미경 등을 제조한다. 산업용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제품 검사 등 특정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머신 비전’ 시스템도 주력이다. 세계 머신 비전 시스템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다.

제조 후 직접 판매

키엔스는 올 1분기 매출이 1404억엔으로 전 분기보다 4.5% 늘었다. 코로나19로 제조업체들이 올 들어 매출이 급감한 것에 비하면 ‘어닝 서프라이즈’로 평가된다. 키엔스의 실적 호조는 코로나19로 생산 차질을 빚게 된 세계 각국 기업의 자동화 장비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이 회사의 고객사는 세계 110개국, 25만 곳에 달한다. 반도체기업, 의료기기업체 등이다.

키엔스는 자체 생산공장이 없다. 제품을 외주 생산하고 직원들은 기획 영업 개발 업무만 맡는다. 코로나 봉쇄 조치 등에 따른 손실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1분기 영업이익률이 50.3%를 기록한 비결이다.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점도 수익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키엔스는 유통업체를 거치거나 각지에 대리점 등을 두지 않는다. 다키자키 다케미쓰 창업자가 두 차례 파산을 겪은 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장을 두지 않는 직판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자동화 설비 도입이 빨라지면서 센서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AI) 등 새롭게 부상 중인 산업 부문에서도 센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 미쓰비시UFJ 모건스탠리증권의 후지토 노리히로 수석투자전략가는 “키엔스는 공장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성장하는 기업”이라며 “키엔스의 최근 급성장은 자동화 부품과 로봇 기술 등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