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글로벌 명품업계가 매장을 열면서 정상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하지만 영업 재개에도 불구하고 명품업계의 고민은 여전히 깊다.

전세계 명품거리의 원조 격인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비통과 구찌 등 일부 명품매장이 지난주부터 재개장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지만 매장은 여전히 썰렁하다. 해외 관광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명품 소비의 최대 ‘큰손’인 중국인을 비롯한 해외 여행객 발길이 뚝 끊겼다. 게다가 각국에 내려진 봉쇄령에 따라 매장이 폐쇄되고 하늘길 뱃길 등이 막히면서 여행이 제한되는 상황이 명품업계엔 직격탄이 됐다. 명품업계는 다른 산업과 달리 오프라인 매장 판매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시장조사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소비자들이 명품 구매에 쓴 돈은 총 980억유로(약 130조5350억원)이었는데 이 중 3분의 2 이상이 해외에서 소비했다. 명품 구매자들의 40%가 해외여행 중에 유럽 등지에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에 비해 명품 쇼핑에 인색한 편이라고 WSJ은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명품업체들은 매장을 리모델링하는 등 이 기간을 ‘재정비’ 시간으로 삼고 있다. 한 명품업체 간부는 “이제는 관광객 없이 명품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페라가모 역시 이같은 생존 모색을 위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업 마케팅 등의 기업 활동을 해외 관광객보다 지역사회 소비자들을 향해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다. 페라가모의 CEO인 미카엘라 르 데블렉 렘미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현지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지역에선 명품 매장들이 순차적으로 영업을 재개하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셧다운 상태다. 텍사스 등 일부 주만 재개장했을 뿐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들의 매장은 아직도 폐쇄됐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소비 습관 및 행태가 급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엔 명품 같은 사치품 지출에 주저함이 없었으나 미증유의 사태를 겪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극심하고 장기적인 침체에 빠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데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는 “쇼핑은 한가한 얘기” “플렉스(사치품 쇼핑을 뽐내는 것)는 이제 좀 경박하게 느껴진다” 같은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다. 명품업계는 코로나19 전보다 중국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지출이 감소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코로나19 여파로 유럽 재계 서열 1위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빌리어네어 인덱스’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올해 268억달러(33조230억원)가 감소했다.

이는 전 세계 부자 서열 500명 가운데 재산 감소폭 1위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아르노 회장의 자산이 대폭 줄어든 건 명품업계가 입은 타격 때문이다. 지난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5% 감소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