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봉쇄조치 완화에 맞춰 대중교통이나 상점 내 마스크 등 얼굴가리개 착용을 권고했다. 지난 3월초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된 이후 영국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공식 권고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정부는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 봉쇄조치의 단계적 완화 관련 상세한 지침을 담은 60쪽 분량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영국 정부는 오는 13일부터 시민들의 야외활동을 전면 허용하는 등 오는 7월초까지 3단계에 걸친 단계적인 봉쇄조치 완화에 착수할 예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주부터 대중교통이나 상점 등 사람들로 붐비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마스크 등 얼굴가리개(face covering)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시민들의 야외활동이 허용되고, 직장 출퇴근이 재개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곳에서는 얼굴가리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사진)는 이날 하원에 출석해 “얼굴가리개를 착용하면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마스크 등 얼굴가리개가 코로나19 감염을 막는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다만 정부는 의료진 등이 사용하는 수술마스크를 착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술마스크는 의료진 등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스카프나 집에서 만든 보호천 등도 마스크 대신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번 권고는 강제사항은 아니다. 영국 총리실은 “마스크 착용은 법으로 집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벌금을 매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제성이 없는 단순 권고일뿐 아니라 낙인효과 및 혐오차별을 우려해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존슨 총리는 이날 하원 연설에서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거나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 감염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지난 2월부터 영국 등 유럽에선 마스크를 착용한 동양인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영국 정부의 봉쇄조치 완화에 대해 잉글랜드를 제외한 영연방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북아일랜드는 반발하고 있다. 시민들의 야외활동을 전면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바이러스의 재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 1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도 이날 하원에서 “정부의 이번 발표엔 해답보다 의문이 더 많다”며 “잉글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모두 다른 방향으로 봉쇄조치 완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이날 3만2065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대비 210명 늘었다. 영국의 사망자 수는 7만명을 넘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다. 영국의 누적 확진자도 22만3060명에 달한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