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일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세계 경제 정세가 매우 복잡해졌다”며 “장기간에 걸쳐 외부 환경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최고 권력기구이자 의사결정기관인 상무위 회의 내용이 공개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전문가들은 사흘 전인 이달 5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급망 재구축 정책이 시 주석을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의 공장은 없다"…글로벌 '리쇼어링 전쟁' 방아쇠를 당기다
미·일 “돌아오는 기업에 보조금”

공급망 재구축은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 경제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한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도록 유도)’ 정책이다. 중국 내 자국 기업들의 공장을 일본으로 되돌리는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이전 비용의 3분의 2까지 정부가 대주는 게 핵심이다.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가구당 30만엔 지급 등 다른 ‘메가톤급’ 경제 대책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으나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지난 16일 중국 상무부 정례 기자회견에서 상무부 대변인과 중국 기자들의 질의응답은 일본의 공급망 정책에 집중됐다. 가오펑 상무부 대변인은 “세계의 공급망은 각국 기업이 선택한 결과”라며 “어떤 나라도 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일본의 대응 속도는 중국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평가다. 이달 중순 일본의 가전 전문 중견기업 아이리스오야마가 공급망 재구축 1호로 중국에서 생산하던 마스크를 국내 공장으로 이전했다. 이 회사는 오는 8월부터 매달 1억5000만 장의 마스크를 양산할 계획이다.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역)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리쇼어링과 외자 이탈이라는 증언이 속속 나온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약 20년간 글로벌화에 힘입어 급성장한 중국 성장 모델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는 특히 일본의 이번 공급망 재구축 계획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이다. 미·중 무역마찰 후 가뜩이나 각국이 중국의 무역의존도를 경계하는 시점에 일본의 중국 이탈은 또 다른 리쇼어링의 기폭제가 될 수 있어서다. 당장 일본의 발표 닷새 뒤인 지난 10일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미국 역시 유턴 기업에 지원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화들짝 놀란 중국…암흑기 ‘60년 주기설’도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선 올해가 60년마다 돌아오는 경자년(庚子年)이란 점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 글로벌 경제 지형의 변화를 심상치 않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계 2류 국가로 전락시킨 아편전쟁 시작(1840년), 제국주의 열강 8개국의 베이징 진격(1900년),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실패에 따른 대기근(1960년) 등 중국은 60년마다 돌아온 경자년에 암흑기를 맞았던 역사를 갖고 있다. 또다시 경자년을 맞은 올해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끝나고 그 시발점은 리쇼어링이 될 것이란 게 ‘60년 주기설’의 골자다.

리쇼어링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하면서다.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무기로 삼아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 사슬을 끊으려고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중국의 ‘세계의 공장’ 역할이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다.

중국 중심 공급망을 뿌리째 뒤흔든 건 미국의 관세 폭탄이 아니라 코로나19였다. 여러 경제대국이 코로나19 발병에 따른 중국발 부품 공급 차질로 호된 경험을 했다. 전 세계 제조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공장이 멈춰서자 지난 2월 글로벌 노트북 출하량은 기존 전망치 대비 반 토막 났다. 1분기 스마트폰 생산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거점을 둔 다국적 기업 중 본국 회귀를 검토한 곳이 80%에 달했다. 미국 애플만 해도 중국 내 위탁생산 시설 중 상당 부분을 중국 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이 ‘중국 탈출’에 더욱 적극적인 이유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중국 의존도가 훨씬 높아서다. 작년 말 일본의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는 21.1%로 집계됐다. 프랑스(5.1%), 영국(5.9%)의 네 배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과의 부품 무역액은 2018년 기준 1430억달러로, 동남아시아 전체(1210억달러)나 미국(851억달러)보다 많았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보건 안보’도 리쇼어링을 촉발한 계기 중 하나다. 일본 제약산업에서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0%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인정한 아비간만 해도 일본 화학회사인 후지필름이 개발했지만 원료의 상당 부분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연평균 369개씩 복귀

주요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적극 추진하는 건 기업 이전만으로도 내수를 크게 활성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법인세 인하나 보조금 지급을 내세워 ‘중국 공장의 본국 이전’을 독려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에선 2010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를 외치며 리쇼어링에 시동을 건 직후부터 제조업체들의 귀향이 잇따랐다. 미국 기업의 유턴 촉진 기관인 리쇼어링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년 후 9년 동안 총 3327개 기업이 미국으로 회귀했다. 연평균 369개꼴이다. 미국의 아시아 지역 수입품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67%에서 2019년 6월 말 56%로 감소했다.

미국 내 일자리도 늘고 있다. 미국 복귀 기업들이 지난 9년간 창출한 일자리는 총 34만7236개에 달했다. 애플 한 곳이 작년 상반기까지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에 만든 일자리만 2만2200개로 집계됐다.

일본 역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부양 정책)의 한 축으로 리쇼어링을 추진해 왔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 3사 및 캐논 등 전자기업들이 이미 일본으로 공장을 옮겼다. 일본이 지난달 2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2.5%의 완전실업률(계절 조정치)을 기록한 것도 리쇼어링 정책 덕분이란 분석이다.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팩토리 구축 및 연구개발(R&D) 보조금 지원을 제시하고 있는 독일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글로벌 기업인 아디다스는 23년 만인 2016년 본국으로 돌아와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도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리쇼어링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2014~2018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52개뿐이다. 연평균 10.4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이 법인세 감면을 가장 큰 유인책으로 내세운 반면 한국은 되레 법인세를 올렸던 게 패착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산 부품에 대한 한국의 의존율(30.5%)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