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가 발칸반도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과 18억5500만 달러(약 2조3000억원)의 차관협정을 체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계획의 일환이다. 헝가리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빌린 자금을 이용해 철도 건설에 나선다.

일대일로 사업이 유럽연합(EU)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에 대한 책임론이 미국과 EU에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차이나머니’를 통해 동유럽 국가들을 적극 지원하면서 EU 분열을 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헝가리와 중국 정부는 24일(현지시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간 철도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차관협정을 체결했다. 미하이 바르가 헝가리 재무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자금을 대출해줘 고속철도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체 융자규모는 18억5500만달러(2조3000억원)다. 대출조건은 20년 만기에 연 2.5% 고정금리다. 조기 상환도 가능하며, 원금 상환에 대해 5년의 유예도 가능하다. 전체 고속철도 건설자금의 85%를 중국이 빌려준 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 바르가 재무장관의 설명이다. 나머지 15%는 헝가리 정부가 조달하기로 했다. 철도는 오는 2025년 완공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헝가리가 있는 중부유럽과 중국이 운영 중인 그리스의 피레우스항을 철도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의 일부 구간 건설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 계획의 일환이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잇는 노선의 길이는 총 350㎞다. 이 중 이 헝가리 노선은 160㎞다. 세르비아 노선도 중국이 2018년 세르비아 정부에 2억9760만달러(3674억원)을 빌려주면서 시작됐다.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이 국영은행을 통해 자금을 해당국가에 빌려주고, 중국 국유기업이 주축이 돼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동유럽 등 전 세계 78개국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일대일로 사업이 EU 회원국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헝가리는 EU 가입국이다. 세르비아는 EU 가입 승인을 받지 못했다. 다만 중국은 세르비아의 전통적 우방국가다.

바르가 장관은 “새 철도 건설을 통해 중국 상품이 그리스에서 중부유럽까지 이동할 수 있다”며 “헝가리가 유럽 물류 네트워크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이번 철도 건설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은 EU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은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재정적 동기뿐 아니라 정치적 동기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다. 중국이 코로나19 와중에 헝가리와 세르비아에 차관제공 등 경제적 원조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적 예속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국가가 중국에서 자금을 과도하게 빌려 일대일로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해당 국가들이 중국에 진 빚이 3800억달러(46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독재 국가에 의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당 국가의 집권세력에 중국 공산당이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헝가리 의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지난달 말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고 행정명령을 통해 기존 법률을 무력화하거나 새 법률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처리했다. 2010년부터 3연임 중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사진)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