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륙의 두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 통제에 나섰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일부 국가들이 국경을 걸어 잠그는 것에 대해 비판했던 기존 입장을 180도 바꿔 통제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유럽연합(EU) 통합의 상징인 솅겐조약(유럽 26개국 내 자유로운 이동 보장)이 코로나19를 계기로 허점을 드러내면서 '하나의 유럽' 구상에 금이 가고 있다는 평가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은 코로나19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양국 간 국경을 통제하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독일 국경에서 사람과 물자의 출입에 대한 검색 절차를 시작한다"며 "우리는 사람과 물자의 통행을 허용하는 한편으로 국경 간 이동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연방정부도 이날 회의를 열어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룩셈부르크, 덴마크 등 5개국과의 국경을 통제하기로 했다. 국경 차단은 16일 오전 8시부터 적용된다.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빠르고 공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며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양국은 "국경 폐쇄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경 간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졌던 것과 달리 엄격한 통제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솅겐조약 원칙이 허물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1995년 발효한 솅겐협정에 기반해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왔다.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 등 6개국을 제외한 22개국과 비(非)EU 회원국인 노르웨이 스위스 등 4개국이 맺었다. 유로화와 함께 '하나의 유럽' 구상을 실현하는 핵심 체제로 꼽힌다.

앞서 노르웨이, 폴란드, 체코, 덴마크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국경 통제를 선언했다. 노르웨이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덴마크도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 한달 간 국경을 오갈 수 없다고 밝혔다. 체코 역시 외국인 입국과 자국민 출국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헝가리 등도 자유 왕래를 중단하고 국경 검문을 시작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만큼 파장이 더 크다. 이들은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자 원칙을 무너뜨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독일의 확진자는 5813명으로 집계돼 이탈리아(확진자 2만4747명) 스페인(7843명)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 프랑스도 5423명의 감염이 확인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이러스가 국경에서 이동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바이러스에 국적은 없다"며 다른 유럽 국가들의 국경 통제 조치를 비난했었다. 하지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3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전화해 "유럽의 솅겐지역 내에서 국경통제를 하는 방안 또는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지역에서 국경 폐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독일 정부 역시 "여행 제한이나 국경 폐쇄가 적절한 조치가 아니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EU 집행부는 "국경을 막으면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이 늘어나면 오히려 방역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고 본다.

솅겐조약은 코로나19가 유럽에 빠르게 퍼지게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닥터 둠’이라고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달 초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유럽 대륙은 국경을 봉쇄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는 큰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국경은 가능한 한 빨리 폐쇄돼야 한다”며 “100만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된 때(2016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솅겐조약은 2015년 난민 위기 당시에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당시 독일 등 여러 국가들이 일시적인 국경 관리와 통제 조치를 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