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사율(치명률)이 25일(현지시간) 두자리수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각국에 코로나19가 퍼지는 가운데 이란만 유독 치사율이 높다.

26일 AP통신과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25일 기준 이란 보건부가 발표한 코로나19 확진자는 95명, 사망자는 16명이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 수 비율은 약 16.84%다. 이날 세계 평균 치사율은 3.36%다. 세계 확진자(회복 판정자 포함) 수는 8만967명, 사망자는 2763명으로 보고됐다. 이란은 하루 전엔 확진자 61명, 사망자 12명으로 치사율이 20%에 달했다.

이란 코로나19 치사율은 세계 평균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란은 중국 외 국가 중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다. 두자리 수 치사율 국가로도 사실상 유일하다. 필리핀이 확진자 세 명, 사망자 한 명으로 통게상 치사율 30%대지만 표본이 유의미할 정도로 많지 않다보니 수치에 큰 의미가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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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애초에 확진자 수 파악 오류" 의혹

전문가들은 이란의 높은 치사율을 두고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보고 있다. 첫번째는 이란이 확진자 숫자를 줄여 발표하거나, 애초에 확진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예상이다. 의료 인프라가 미비해 위독한 환자에 대해서만 의료 지원과 검진 등이 몰리다 보니 사망자 위주로 통계가 잡힌다는 얘기다. 이란 당국에 따르면 25일 기준 이란에선 약 750명이 코로나19 유사 증상을 보여 검사를 받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일부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높은 이란 코로나19 치사율을 바탕으로 이란 내 코로나19 환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코로나19 세계 평균 치사율인 2%를 적용할 경우 이란의 확진자는 총 600여 명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이란이 기존에 밝힌 것 보다 다섯배는 높은 숫자다.

◆"제대로 치료 못해 치사율 높다" 지적도

이란에서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사망률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은행 텔리머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센터를 이끄는 하스나인 말릭 센터장은 “이란은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병상 수가 1.5개에 불과하다”며 “이는 미국이나 인접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의약품 수입이 까다로워서다. 보건용품과 의약품 등은 제재 예외 대상이지만 사실상 의약품을 들여올 수는 없다는게 이란 당국의 주장이다. 의약품 수입시 대금 결제 핵심 역할을 하는 이란 민간은행이 제재 대상이라 거래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오스만 다르 글로벌헬스부문 책임자는 미국 CNBC에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의료 장비나 개인 방역 장비, 의약품 등을 수입하기 힘든 상태”라며 “그래서 주변국보다 코로나19 대응 능력이 제한적이고, 이런 상황이 이란 내 코로나19 환자 사망률을 올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믿을 수 없어 시민들 '패닉' …사태 심화 전망
전문가들은 이란 코로나19 사태가 당분간 계속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부가 늦장 대처로 일을 키웠고, 이때문에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보건 당국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으면서 병이 더 퍼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아시프 슈자 싱가포르국립대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란에선 확진자와 사망자가 갑자기 확 늘었다”며 “당국이 총선 준비에만 바빠 초반 징후를 놓쳤거나, 혹은 초반 징후를 봤는데도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지난 21일 총선을 치렀다. 이란 보건 당국은 첫 확진자를 지난 19일 발표했다. 당시 첫 확진자 두 명은 확진 발표 다섯 시간만에 각각 사망했다.

이란 안팎에선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란 곰 선거구의 아흐마드 아미르아바디 파라하니 이란 의회의원은 지난 13일까지 곰에서만 코로나19 사망자가 50명 발생했다고 이란 반관영 ILNA통신에 주장했다. 이란 정부는 즉각 의혹을 부인했다. 25일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미 국무부 청사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이란이 이란 내 코로나19 발생 관련 필수 정보를 숨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이란은 코로나19 관련 사항을 정확히 발표하고 국제기구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의혹이 퍼지면서 이란 내 질병 대처 능력도 확 깎인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디나 에스판디어리 미 하버드대 연구센터 연구원은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되면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당황하고, 정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게 된다”며 “이 경우 보건 당국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발병을 감지·대처하기 어려워져 문제가 더 커진다”고 우려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