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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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일본 엔화는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며 글로벌 경제 위기 국면에서 몸값이 뛰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글로벌 경제에 불안요인이 불거지면 엔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아지면서 엔화강세(엔고)가 빚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 교란 우려에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세계경기 악화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엔화 값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한 폐렴’사태와 관련, 안전자산으로서 엔화의 역할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의 원인을 두고 일본 내에서 갑론을박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우한 폐렴’사태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외환 시장에서 엔화를 사겠다는 수요는 뚜렷이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사시 엔을 매수한다’는 현상이 이번에는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달러당 109~110엔대를 주로 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이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달러당 105~107엔대를 오갔던 지난해 여름에 비해선 ‘엔화 약세’로 평가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한 폐렴’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일본 증시에서 닛케이225지수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시장에서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지면 엔고·주가 하락이 빚어졌던 과거의 통례에 비하면 주가하락은 발생했지만 엔고는 감감 무소식인 것입니다.
우한 폐렴 사태에도 엔고현상 빚어지지 않은 엔화 값/니혼게이자이신문 홈페이지 캡쳐

우한 폐렴 사태에도 엔고현상 빚어지지 않은 엔화 값/니혼게이자이신문 홈페이지 캡쳐


일본 내에선 엔화 값이 큰 변동을 보이지 않는 이유로 이번 우한 폐렴 위기가 중국에서 벌어진 특수성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중국 내 경제 불안이 이어지면 방일 관광객 감소 등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일본 보다 유럽이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탓에 중국 경제가 불안해지면 유럽이 가장 먼저 휘청 인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중국발 위기에선 유로화 매도 압력이 강해져 유로화 약세가 다른 통화에 비해 가파르게 진행됩니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약세가 강하게 빚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엔화 강세·달러화 약세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같은 유럽 내 불안 요인까지 더해져 유로화 약세가 심화하면서 결론적으로 엔화 안정화에 기여한 면도 있습니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하고 전염병 확산이 대규모로 번질 경우, 글로벌 경기 불안이 고조돼 과거와 같은 안전자산 회귀(엔화 매수)가 빚어질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때에 비해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욱 커졌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몸집을 키운 중국 때문에 과거 경제위기 때 통용되던 안전자산 투자동향에 대한 ‘공식’도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는 현상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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