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디턴 교수·래리 서머스 교수
앵거스 디턴 교수·래리 서머스 교수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기득권의 지대추구(rent seeking)가 불평등의 핵심입니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올해는 신흥시장에 더 도전적인 한 해가 될 겁니다.”(빌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세계적 경제석학들이 3~5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에서 글로벌 경제 현안에 대한 해법과 전망을 제시했다.

앵거스 디턴 교수는 “불평등은 불공정의 결과이며 이는 나쁜 불평등”이라면서도 “모든 불평등이 반드시 이런 식(나쁜 불평등)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과 투자로 부자가 되는 것까지 매도해선 안 된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기득권층이 로비 등을 통해 ‘밥그릇 챙기기’를 하는 지대추구 행위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래리 서머스 교수는 “수년간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유입이 (이전보다) 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신흥시장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의미다.

경제위기를 분석한 저서 《이번엔 다르다》로 유명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향후 경제위기의 ‘잠재적 뇌관’으로 부채를 꼽았다. 로고프 교수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은 물론이고 선진시장의 막대한 부채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롯한 이들 국가의 재정 여건을 보면 세입 구조가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정부가 돈을 무한정 찍어내 인프라 투자나 복지에 쓰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현대통화이론(MMT)’에 대해 “혼란스럽고 어리석은 이론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 “금리 인하와 감세 등이 없었다면 관세 충격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며 “문제는 앞으론 금리 인하와 감세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했다.
디턴 "의료 기득권 탓에 병원비 높아지고 저소득층 더 가난해져"

2015년 경제 발전과 빈곤 등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사진)는 “기득권의 지대추구(rent seeking)가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익집단의 ‘밥그릇 챙기기’가 불평등의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디턴 "정당한 부자는 문제 안돼…나쁜 불평등 핵심은 지대추구"
디턴 교수는 지난 3일 미국경제학회에서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건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모든 억만장자는 정책의 실패다. 억만장자는 존재해선 안 된다’는 말까지 하지만 그렇게 볼 건 아니다”고 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등의) 진보는 종종 불평등을 낳는다”며 “지금 인터넷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고, 공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건 문제가 아니다”며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는 것도 공정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기득권의 지대추구, 부를 강탈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불평등이 나쁜 것은 아니며 기득권의 지대추구가 나쁜 불평등이라는 얘기다. 지대추구는 특정 이익집단이 로비 또는 약탈을 통해 독점적 초과수익을 누리는 걸 지칭하는 말이다.

디턴 교수는 미국의 불평등과 관련해 “나의 주요 우려는 아마존이 아니라 의료 분야”라고 했다. 그는 “미국 소득 상위 1% 중 16%, 소득 상위 0.1% 중 6%가 의사”라며 “이들은 의사협회와 의회로부터 기득권을 보호받으면서 의사 정원을 컨트롤하고 외국 의사가 미국에 유입되는 걸 막아 지대를 추구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결과 의료비 부담으로 매년 수조달러가 낭비되고, (의료비 부담 때문에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줄고, 이에 따라 비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파괴된다”고 지적했다.

디턴 교수는 “이는 내가 그동안 얘기해온 ‘메이커’와 ‘테이커’의 문제”라고 했다. 디턴 교수는 그동안 ‘메이커(정당한 부의 창출자)’와 ‘테이커(부의 강탈자)’를 구분해 ‘메이커가 문제가 아니라 테이커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디턴 교수는 “상류층의 지대추구 행위,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유리한 분배, 교육수준이 높은 엘리트층을 더 부유하게 하기 위해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많다”고 쓴소리를 했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불평등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공통 과제”라고 했다. 해법으론 ‘커뮤니티(지역사회 공동체) 강화’를 제시했다.

샌디에이고=주용석/김현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