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부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살 사건을 두고 미국에 강력한 보복을 다짐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보복하면 미국은 즉각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경고장을 날렸다. 현재로서는 이란이 대리군을 통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만 자칫 양측의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트윗을 통해 “이란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이란을 더욱 세게 칠 것”이라며 “미국은 이미 이란 내 52곳을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놨다”고 밝혔다. 그는 “공격 목표 52곳은 이란이 인질로 잡았던 미국인 52명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이란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주이란 미 대사관에 미국인 52명을 444일간 억류했다.

이란은 미군이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공습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하자 미국에 강력한 보복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이란 국영TV는 이날 이란 남부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쿰의 잠카란 모스크에 적기(赤旗)를 게양하는 모습을 방송했다. 이슬람 문화에서 적기를 올리는 것은 순교당한 이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으로 통한다.

이란 국영TV는 이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가족을 찾아가 조문하는 모습도 생중계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딸에게 “우리(이란) 모두가 네 부친의 원수를 갚을 것”이라며 “미국은 이번 범죄로 향후 수년간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공식서한을 보내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

호세인 데흐건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은 “(이란의) 대응은 틀림없이 군사적일 것이며, (미국의) 군사기지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그는 “이 시국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그들이 가한 타격에 준하는 타격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내 친(親)이란 세력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한 이라크 바그다드 일대에선 미군 기지와 미 대사관을 겨냥한 포격이 잇달아 발생했다. AP통신은 4일 주이라크 미국 대사관이 있는 바그다드 ‘그린존’에 박격포탄 두 발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진 알발라드 미 공군기지엔 카투사 로켓포탄 두 발이 떨어져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 여럿이 부상했다.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PMF) 산하 카타이브 헤즈볼라도 미군기지 공격 계획을 드러냈다.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이라크 군경은 오늘부터 미군기지에서 최소 10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며 “아니라면 (미군의) 인간 방패가 될 것”이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이란 정부가 지정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추모 기간 이후 대리군 등의 공격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정부는 4~6일을 추모 기간으로 선포했다. IRGC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장례식을 6일 테헤란에서 열 예정이다.

미 국방부는 이날 중동에 병력을 긴급 증파한다고 발표했다. 미군 82공수부대 내 신속대응병력 3500명을 수일 내로 중동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이 중동 일대에 배치한 미군 규모는 6만~8만 명에 이른다. 미국은 앞서 이라크 내 미국 시민권자에게 이라크에서 출국하라는 긴급 소개령도 내렸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계속 고조되면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수잔 말로니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담당 부국장은 “이란 지도부는 지난 40년간 체제 유지를 위해 (미국과의)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해왔지만, 이번에 오판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