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내년 말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완전히 탈퇴하기로 했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에 버금가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존슨 "브렉시트 준비기간 연장 안한다"…다시 커지는 노딜 공포
17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브렉시트 전환 기간(준비 기간)을 내년 12월 31일까지 종료하고, EU에 추가 연장을 요구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탈퇴협정법안(WAB)을 20일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브렉시트 단행을 공약으로 내세운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지난 12일 열린 총선에서 절반(326석)을 훨씬 웃도는 365석을 확보했다. 존슨 총리는 당초 EU와 합의한 대로 내년 1월 말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1월 말 브렉시트가 단행되더라도 영국과 EU 간 경제 분야에 당장 큰 변화는 없다. 이때 영국은 EU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에서 공식 탈퇴하지만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는 잔류한다. 영국과 EU가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내년 12월 31일까지 전환 기간을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환 기간 동안엔 지금처럼 역내 사람과 자본, 상품,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다. 전환 기간은 양측이 합의하면 한 차례에 한해 최대 2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내년 6월 말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영국과 EU는 내년 6월 말까지 FTA 체결 여부도 결정한다. FTA를 맺는 시한은 내년 말이다.

영국 정부가 1년밖에 안 되는 짧은 전환 기간 중 EU와 FTA를 체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FTA뿐 아니라 외교안보, 교통, 교육, 이민 정책 등 다른 협상 분야도 광대하다.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도 전환 기간 내 FTA 합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존슨 총리가 20일 상정 예정인 새로운 탈퇴협정법안은 하원에서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새 탈퇴협정법안엔 영국과 EU가 지난 10월 합의한 새 브렉시트 안이 모두 반영됐다. 영국이 EU와 브렉시트에 이미 합의했고, 영국 하원도 20일 이를 승인할 예정이기 때문에 사전적인 의미의 ‘노딜 브렉시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환 기간 내 FTA 체결 없이 영국이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탈퇴하면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관세 부담에 따른 무역 축소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 관세동맹을 탈퇴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아 교역을 하게 된다. 이 경우 영국은 EU산 물품을 수입할 때 WTO의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까지는 무관세였지만 2021년 1월부터는 10%의 관세를 적용받는다. 당장 양국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비자 갱신 및 체류 지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영국과 EU의 노딜 우려가 불거지면서 파운드화 가치도 외환시장에서 다시 하락세를 보였다. 영국 총선 결과가 확정된 지난 13일 19개월 만에 최고치인 미 달러화 대비 파운드당 1.34달러까지 치솟았던 파운드화 가치는 17일 1.3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