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2조달러에서 1조7000억달러 안팎으로 낮춰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 높은 수준이어서 기업공개(IPO)가 이뤄지면 더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람코, IPO 목표가 2조→1.7조달러로 낮춰…IB "그래도 거품"
17일(현지시간)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에 따르면 아람코는 이날 목표 공모가 범위를 1주당 30~32리얄(약 9313~9934원)로 제시했다. 아람코는 “기본 공모 규모는 전체 지분의 1.5%에 해당하는 30만 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람코는 다음달 11일 사우디 타다울증시에서 첫 거래를 시작한다. 이에 앞서 이날부터 오는 28일까지 개인 투자자 청약을, 다음달 4일까지 기관투자가 청약을 받는다. 다음달 5일 최종 공모가를 결정한다.

아람코의 공모가가 목표 범위 내에서 결정되면 기업가치는 1조6000억~1조7100억달러(약 1863조~1991조원) 선이 된다. 사우디 정부 실세로 아람코 IPO를 주도 중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내세운 2조달러(약 2329조원)의 80~85% 수준이다. 아이함 카멜 유라시아그룹 애널리스트는 “IPO 후 주가가 쭉 공모가를 밑돌 경우 빈 살만 왕세자는 정치적 타격을 받는다”며 “이를 우려해 기업가치를 미리 하향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람코가 지난 9일 발표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올 3분기 아람코 순이익은 212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0% 줄었다. 세계적 저유가 추세에 매출이 줄어든 데다 지난 9월 석유시설 피습을 당해 비용 지출이 늘어서다.

상장 예정 지분에 목표 공모가 상한선을 적용하면 아람코는 타다울증시에서 최대 256억달러(약 29조8112억원)를 조달할 전망이다. 2014년 미국 뉴욕증시에서 역대 최대 상장 기록을 세운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의 공모가(250억달러)를 앞선다. 공모가가 목표 하한선에 그칠 경우 아람코 공모액은 240억달러(약 27조9480억원)로 기존 IPO 기록을 못 깬다. 다만 뉴욕이나 런던 등에서 2차 공모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상 최대 규모 IPO라는 것은 확정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람코가 기업가치 목표치를 하향조정했지만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아람코 기업가치를 1조2000억~1조7000억달러(약 1397조~1979조원)로 예상하고 있어 고평가 논란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중동 현지에서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아르티 찬드라세카란 아부다비슈아캐피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아람코의 목표 주가로 볼 때 연간 배당 수익률은 4.4~4.8%가 될 것”이라며 “기관투자가들에는 채권 대안으로 고려할 만큼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아부다비의 에너지 컨설팅 기업인 마나르그룹의 자파 알타이 전무는 “최근 에너지 시장에서 원유 수요가 낮은 편이라 이번에 내놓은 기업가치 평가액 범위도 실제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투자자는 아람코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 어렵다. 국내에 사우디 주식 거래를 지원하는 증권사가 없어서다. 사우디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은 아람코 주식을 보유한 사우디인과 스와프 계약을 하는 형식으로 주식을 살 수 있으나 사우디 시장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해 절차가 까다롭다. 대신 중동펀드와 원유펀드, 미국에 상장된 사우디아라비아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통해 간접 투자할 수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