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 타결이 또다시 미뤄졌다. 중국에 만성적 무역적자를 기록 중인 인도 때문이다. RCEP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에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6개국이 참여하는 거대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체결될 경우 역내 경제 규모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인 약 25조달러에 이른다. 역내 인구는 세계 인구 절반인 35억 명에 달한다.
'세계 최대 FTA' RCEP 타결 또 연기…이번에도 인도가 태클
4일 태국 현지 언론들은 이날 RCEP 관련 정상회의가 방콕에서 열리지만 협상 타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라몬 로페스 필리핀 통상산업부 장관은 지난 3일 아세안 정상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RCEP은 막바지 논의 거리가 일부 남아 내년 2월까지 협상이 이어질 것”이라며 “주요국 중 한 곳이 막판 추가 협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나루몬 뻔요신왓 태국 정부 대변인도 “내년 2월 전후 RCEP 서명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RECP 협상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2015년부터는 매년 타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에도 4일 타결될 것으로 예상돼 관련국 정상들이 대거 방콕을 방문했다.

하지만 인도 때문에 타결이 되지 않는 것으로 외신들은 보도했다. AFP통신은 “16개 참가국 중 15개국이 관세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상을 끝냈다”고 보도했다. 관세 인하에 동의하지 않은 곳은 인도다. 블룸버그통신은 한 인도 관료를 인용해 인도가 RCEP 규정 중 인도의 기본 관세와 특정 제품 관련 규제 내용을 수정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인도는 그동안 RCEP 체결을 미뤄왔다. RCEP 협상 당사국 대부분이 2015년부터 매년 연내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가 제품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경쟁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라집 비스와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 부문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인도는 이미 중국에 대해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며 “인도 정부는 RCEP을 체결하면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들어와 제조업이 대폭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내 농업 분야에서도 RCEP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인도는 농민 인구가 2억6300만 명으로, 생산인구 중 농업 분야 비중이 가장 크다. 인도 농민들은 농산물과 유제품 시장에서 호주나 뉴질랜드 등과 경쟁해 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도 전역 농민조합 250곳을 산하로 둔 인도 농민협회는 최근 RCEP을 반대하는 전국적 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인도가 RCEP에 가입하는 대신 여러 보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전날 방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RCEP을 통해 광대한 인도 시장을 개방하는 만큼 외국도 인도 기업이 이득을 볼 수 있는 분야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 정부는 작년 말에도 RCEP 체결을 미루며 “인도는 고성장하는 대국이지만 개발도상국이기도 하다”며 “(선진국과는)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인도가 RCEP에서 아예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인도 관료는 블룸버그통신에 “인도는 협상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지, 아예 RCEP에서 빠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라디카 라오 싱가포르 DBS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인도가 RCEP 역내 무역장벽을 낮출 경우 당장은 수출에서 타격을 받겠지만, 서비스와 투자 시장을 개방하면서 받는 이익도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참여율을 높이고 외국 시장 접근성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