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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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서비스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경직된 것으로 유명하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돼 있어 환자 개인이 병원 서비스에 지급하는 비용이 아주 큰 편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길다. 미국 컨설팅회사 메릿호킨스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환자 한 명이 내과의사와 만나 진료받기 위해서는 평균 29일을 기다려야 한다.

작닥(ZocDoc)은 미국 의료 시장이 가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의사와 환자 간 연결을 원활하게 하는 예약 플랫폼을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제공한다. 작닥은 2007년 설립돼 현재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가 넘는 기업가치를 달성한 유니콘 기업이다. 미국 2000여 개 도시에서 600만 명이 넘는 환자가 병원 진료 예약에 이 앱을 이용하고 있다.

의사 출신 기업가, 美 의료시장에 도전장

작닥을 설립한 올리버 카라즈 최고경영자(CEO)의 원래 직업은 의사다. 300년 전통의 독일 의사 가문 출신인 카라즈는 부모의 뜻에 따라 독일 뮌헨에서 의대에 진학해 의사 면허를 땄다. 하지만 일찍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사업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터라 이내 다른 길을 찾았다. 카라즈는 고교생 시절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을 창업해 이를 통한 수익으로 의대 학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카라즈는 3년 정도 의료 분야에서 일한 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러 분야를 다루게 될 것이란 그의 기대와는 달리 7년 동안 헬스케어 시장을 커버하는 업무에만 투입됐다. 그럼에도 카라즈는 실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해 헬스케어 시장 생리를 속속들이 공부했다. 카라즈는 맥킨지 독일지사에서 일하던 중 본사 근무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생활이 익숙해지던 즈음 카라즈는 미국 병원들이 환자에게 충분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에 지급하는 비용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진료받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너무 길었다. 그의 동료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를 꺼렸다. 카라즈가 2007년 맥킨지를 떠나 작닥을 창업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은 이런 상황을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의사들과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시장 공략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지만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카라즈는 작닥 설립 후 수개월의 시간을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 써야 했다. 주변에서는 병원 예약 앱을 통한 사업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보장해줄지 알 수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카라즈는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왜 아무도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카라즈는 2007년 말 미국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가 주관하는 스타트업 발표회에 초대받아 작닥을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800명이 넘는 기자들 앞에서 작닥의 서비스를 상세히 소개했지만 큰 호응은 없었다. 발표회 참가 후 한 달 동안 작닥을 통한 병원 예약은 다섯 건에 그쳤다. 이 중 세 건은 작닥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사업가들이 한 것이었다. 카라즈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카라즈는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병원들을 작닥의 서비스 생태계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작닥 시스템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판단이 선 뒤 매일 수십 개 병원을 드나들며 의사들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카라즈는 “커피 한 잔이 억만금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했다”고 말했다.

카라즈의 노력은 점차 빛을 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닥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과 병원 수가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투자 제의도 들어왔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세운 투자운용사인 베이조스엑스페디션이 작닥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이 시기다. 이후 작닥은 투자사 골드만삭스와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인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CEO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스타트업 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끊임없는 혁신이 성공 비결

작닥이 미국 의료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혁신 덕분이다. 초기에는 병원을 예약하는 서비스만 제공했지만 이후 이용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여러 가지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작닥은 2012년 병원에 제출해야 하는 여러 서류를 앱을 통해 미리 작성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다. 2017년에는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글로 설명하면 필요한 진료를 추천해 주는 검색엔진 시스템을 내놨다.

작닥이 가장 최근 내놓은 혁신은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한 ‘보험 체커’ 기능이다. 환자들은 이 기능을 활용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보험이 어떤 질환의 진료를 보장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용자들의 과거 병원 진료 현황을 종합해 각 질병에 어떤 보험 상품이 가장 효과적인지 파악하게 해 준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