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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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입시 및 부동산·펀드 투기 등 대부분의 의혹 제기를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다. 조 후보자 스스로도 각종 의혹을 대부분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달 2~3일 잠정 합의된 인사청문회 때 가짜뉴스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겠다는 여당의 계획이다.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회는 조 후보자에 대한 허위조작정보를 생산·유통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다. 박광온 특위 위원장은 “조 후보자 관련 가짜뉴스를 생성하고 유포는 행위에 법적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일본과의 무역갈등을 계기로 가짜뉴스를 공식 석상에서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흘 후인 지난 16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기념식에 보낸 영상 축사에선 “가짜뉴스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진실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가짜뉴스를 처벌하기 위한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고 내세우는 사례가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다. 유럽 수준으로 가짜뉴스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영국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공식 석상에서 ‘가짜뉴스’(fake news)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혹은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지금도 인터뷰 등에서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쓰는 정치인과 관료들도 적지 않다. 다만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성명이나 문서에선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가 뭘까. 지난해 10월 영국 하원 소속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는 정부에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위원회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국의 데이터 분석 업체인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CA)가 5000만명에 달하는 이용자 정보를 외부에 유출한 사실이 적발된 후 18개월 동안 심층 조사를 벌였다.

위원회는 당시 보고서를 통해 가짜뉴스라는 용어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당 뉴스를 읽거나 보는 독자들의 선호에 따라 가짜뉴스의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또 가짜뉴스가 단순 실수에 따른 오보뿐 아니라 외부 간섭에 따른 결과물까지 아우르는 등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규제와 법 집행을 위해선 가짜뉴스의 개념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위원회의 권고였다. 영국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 ‘잘못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다. 위원회는 특정 의도를 품은 채 유포된 ‘잘못된 정보’를 ‘조작된 정보’라고 규정했다.

당시 하원 위원회가 제시한 잘못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의 개념 및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조작된 내용(Fabricated & Manipulated content): 내용이 완전히 거짓이거나, 관심을 끌기 위한 과장된 헤드라인을 내세워 왜곡한 정보

ⓑ출처를 사칭한 내용(Imposter content): 신뢰도가 높은 특정 언론사 및 기관 등의 발표를 사칭한 정보

ⓒ오해 소지가 있는 내용(Misleading content): 특정 관계자 멘트를 진실인 것처럼 표현하는 등 오해를 심어주는 정보

ⓓ잘못된 연결고리(False context of connection): 기사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헤드라인을 내세우는 등 연결고리가 잘못된 정보

ⓔ풍자와 패러디(Satire and parody): 유머를 품고 있지만 의도치 않게 독자를 속이는 내용이 포함된 정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3월 특별 보고서를 통해 가짜뉴스 대신 ‘조작된 정보’ 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일부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며 공격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 EU 집행위원회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위원회는 가짜뉴스는 뉴스 형식뿐 아니라 댓글이나 트위터, 동영상 등 다양한 형식을 띄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가짜뉴스라는 용어 자체가 뉴스에 국한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는 것이 위원회의 설명이다.

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에서도 가짜뉴스 논란은 분분하다. 독일은 지난해 1월부터 네트워크 시행법(NetzDG)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 일부 언론을 통해 이른바 ‘가짜뉴스 방지법’으로 소개됐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법은 독일 형법상 명시된 주요 범죄(범죄선동, 범죄단체조직, 테러, 모욕, 협박, 혐오표현, 아동음란물 등)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위법 게시물로 규정한다. 이용자가 특정 인원 이상인 플랫폼사업자는 이를 삭제하거나 차단할 의무가 부과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가짜뉴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기준이 없다. 가짜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가짜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찾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 상대방의 주장은 가짜뉴스라며 치고받는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도 조 후보자는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라며 폄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보도를 모조리 가짜뉴스라고 폄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가짜뉴스' 용어 사용 금지한 英 정부…한국은 개념조차 불분명
공공에 해를 끼칠 목적 혹은 이윤을 목적으로 유포되는 잘못되고 조작된 정보는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가짜뉴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합의된 기준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 아닐까. ‘듣기 싫은 비판’이나 ‘자신과 다른 주장’까지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는 건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불리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며 공격하고 있다’는 EU 집행위원회의 지적을 곰곰히 새겨봐야 할 때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