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나포·피격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일대에 선박을 운용하는 해운업계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일대에서 피해를 입은 선박이 영국 외 다른 국가와도 관련이 커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퍼져서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을 비롯한 각국 해운업계에서 호르무즈 해협 운항 선박 관련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동 일대를 지나는 선박보험료는 지난 두 달 간 열 배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로펌 DWF에서 교통·해상 분야를 총괄하는 조나단 모스 파트너변호사는 “선박보험료는 8주 전보다 8~10배 가량 올랐다”며 “최근 역내 군사 충돌 등 위험이 고조되면서 더 오를 것으로 본다”고 FT에 말했다.

FT에 따르면 해운업계는 어느 국가, 어느 선박이든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원유나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은 운용 기업 국적과 선박 등록 국가, 선원 국적 등이 매우 다양해서다.

이번에 이란이 나포한 스테나 임페로호도 그렇다. 영국 국적으로 등록됐지만 선박주는 스웨덴의 스테나AB그룹 자회사 스테나벌크다. 배를 직접 운용하는 용선사는 스테나AB그룹 소속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에 본사를 둔 노던 마린이다. 선원은 인도인 18명, 러시아인 3명, 필리핀인 1명, 라트비아인 1명 등이다.

이때문에 해운업계 일각에선 민간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연합 함대를 운영하는 등 공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밥 생귀네티 영국 해운회의소장은 “(호르무즈 해협 선박 안전은) 영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제 공조를 통해 역내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정 국가의 정규군이 움직일 경우 선주나 용선사 등 민간 기업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선박금융 자문기업인 캐럿자스마린어드바이저의 바실 캐럿자스 최고경영자(CEO)는 FT에 “민간 상선이 경비 인력을 고용하는 정도로는 특정 국가 정규군으로부터 선박을 보호할 수 없다”며 “국제적인 차원에서 항해 안보를 보장하는 ‘해상 인터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르무즈해협 개요.  /한경DB
호르무즈해협 개요. /한경DB
일대에 함선이나 전투기를 운용할 경우 민간 선박 나포 등을 일부 막을 수 있다는 평이다. 미국 CBS에 따르면 지난 19일 이란이 영국 유조선을 나포한 날 미국 화물선 ‘머스크 시카고’도 인근 항로를 항해했다. CBS는 “당시 미군 F-18 전투기가 함께 이동했고, 이 덕분인지 이란혁명수비대 등이 접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도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9일 연 관련 브리핑엔 한국을 비롯해 60여국 관계자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루드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보는 “미국은 ‘센티넬(보초병)’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의 항행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 국가와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함 호위 등이 늘어날 경우 이미 긴장 상태인 서방국과 이란간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드 리스트 에디터인 리처드 미드는 “중동 역내 상황을 고려할 때 군 병력이 일대 선박을 호위하는 것은 일대 긴장을 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FT는 “호르무즈 해협 일대 항행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며 “일대 선박 호위가 군사적 도발으로 인식되지 않으면서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다. 가장 좁은 구역은 폭이 34㎞에 불과하지만 운행 선박이 매우 많은 편이다.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3분의 1 정도가 이를 지나고, 중동 일대 화물선도 주요 교통로로 쓰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