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도심 타흐리르 광장 등에 모여든 시위대의 모습. 이들은 이날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간 갈등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 출처 트위터 캡쳐
지난 24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도심 타흐리르 광장 등에 모여든 시위대의 모습. 이들은 이날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간 갈등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 출처 트위터 캡쳐
최근 악화일로인 미국과 이란간 갈등 상황을 두고 이라크 정부가 이란 편에서 중재를 하겠다며 나섰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 일부는 이라크 정부가 한 쪽 편을 들면 자칫 양국간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현지시간) 무함마드 알리 알 하킴 이라크 외무장관은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한 모하메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만나 최근 이란과 미국의 갈등 상황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알 하킴 이라크 외무장관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란에 대한 경제 차단 조치가 효과적인 결실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라크는 이란의 편”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작년 11월부터 재개한 대(對)이란 경제 제재 조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이라크는 중재자로서 상황을 돕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정부는 중재를 위해 조만간 미국과 이란에 각각 대표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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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하메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은 걸프지역 일대 아랍권 국가들과 균형있는 관계를 쌓고자 하며, 이들과 불가침 조약을 맺기를 제안한다”고 화답했다. 미국의 압박에 대해선 “경제적이든 군사적이든 전쟁이 난다면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알 하킴 이라크 외무장관의 발언은 최근 바그다드 시위에 모인 국민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라크에선 지난 24일 수천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바그다드 타흐리르 광장 등에 모여 이라크 정부가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이날 시위대는 ‘전쟁에 반대한다’ ‘이라크에(만) 찬성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미국 등 서방과의 이라크전쟁, 이슬람국가(IS) 사태 등을 거쳐 이제 막 재건 중인 국가가 또다른 중동 역내 갈등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시위대는 대부분 반외세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유명 성직자 겸 정치인 무크타다 알사드르 지지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사드르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과 이란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라크도 끝장난다”며 “이라크가 이번 갈등에 상관해야 한다는 이들은 민족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라크는 최근 역내 갈등을 두고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왔다. 그간 전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으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일정 부분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알자지라는 “이라크는 미국의 동맹국이자 이란의 이웃나라로 역내 갈등 중간에 끼게 됐다”며 “이라크 국민들은 이번 갈등으로 이라크가 다시 전쟁터로 돌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