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화가치 낮추면 보복 관세"…한국도 사정권
미국이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역전쟁 중인 중국에 ‘환율전쟁’까지 벌일 수 있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도 미국으로부터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어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 상무부는 23일(현지시간) 미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 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통화 보조금’을 상쇄하기 위한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이 미국 노동자와 기업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더 이상 환율정책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의 보조금 때문에 제품 가격이 낮아져 수입국의 산업에 피해가 생겼을 때 부과하는 관세다. 상무부는 상계관세를 부과할 때 수출국의 ‘통화가치 절하’ 여부를 고려하겠다고 설명했다. 언제부터 시행할지 등 구체적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또 다른 행보”라며 “한국 일본 인도 독일 스위스 등(환율 관찰대상국)의 제품에도 추가 관세가 부과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도 비상…타깃 아니지만 '관찰대상국' 올라 안심 못해

美 "통화가치 낮추면 보복 관세"…한국도 사정권
미국 상무부가 ‘통화가치 절하’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독일, 스위스, 인도 등 6개국이 미국으로부터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의 1차 타깃은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그동안 중국의 환율 조작 가능성을 공공연히 의심해온 데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미국이 ‘환율 저평가’를 이유로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외신에서도 중국뿐 아니라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머지 국가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재무부는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환율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때 △연간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초과 △GDP 대비 외환 순매수 2% 초과 등 세 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하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다. 두 개 조건에 해당하거나,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도 중국처럼 대미 무역흑자가 과도한 국가는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한다.

한국은 지난해 하반기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흑자 210억달러,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4.6% 등 두 가지 기준에 해당돼 관찰대상국이 됐다. 그러나 지난해 무역흑자가 179억달러로 줄어들면서 지금은 한 가지 요건만 해당해 조만간 관찰 대상국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미 상무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따라 상계관세를 부과할지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위적인 환율조작국뿐 아니라 시장 여건에 따라 단순히 환율이 저평가된 국가도 ‘상계관세 폭탄’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 저평가국에 언제부터 상계관세를 부과할지도 불확실하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불공정한 환율 정책을 시정하겠다’고 약속한 걸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환율 문제를 불공정 무역의 한 요인으로 지목해왔다. 당선 후에도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환율을 조작해 미국을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보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무역협정에 ‘환율 개입 금지’ 조항을 넣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11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개정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서명하면서 환율 개입 금지 조항을 신설한 게 대표적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