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국영은행에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 규모의 리라화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영은행들이 부실채권을 관리해 기업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지원이 외화 부채로 인한 위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터키, 국영은행에 50억달러 긴급 수혈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터키 재무부는 10일(현지시간) 5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국영은행 등에 유동성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이날 “이번 조치는 국영은행이 보유한 기업 부실채권을 관리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자금 대부분은 최근 기업 디폴트가 급증하고 있는 에너지와 건설 업종의 기업 채권에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터키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터키 기업의 외화부채 규모는 3130억달러(약 356조원) 수준으로 터키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한다. 터키는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통화팽창기에 경제 성장을 위해 외채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가 30% 가까이 폭락하면서 은행과 기업의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근본적인 부채 문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블루베이애셋 매니지먼트의 팀 애쉬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과도한 부채 문제와 기업 디폴트 리스크를 인식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경제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WSJ는 “터키 은행들이 이번 유동성으로 부채에 허덕이는 기업들을 지원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며 “부실 기업에 실탄을 소진해버려 정작 우량 기업에 자금 공급이 제한되면 터키 경기 회복을 더욱 지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터키 재무부 등은 최근 급증한 디폴트 위기만 넘기면 공공지출 감소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이날 “터키 은행이 보유한 부실 채권 비율이 기존 4.2%에서 6%까지 오를 수 있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실채권 비율 최고 6%는 많은 투자자가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치라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터키가 외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해외 원조를 배제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변수도 남아있다. 터키는 러시아 미사일 도입을 놓고 미국과 대립 중이다. 미국은 터키가 러시아에서 미사일을 들여올 경우 미국의 ‘적대세력에 대한 통합제재법(CAATSA)'에서 규정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지난 8일 러시아를 방문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자리에서 미사일 인수 의사를 재차 밝혔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