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토종 자동차 업체인 지리(吉利)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을 겨냥한 거침 없는 인수합병(M&A) 행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리차는 2017년 스웨덴의 볼보와 볼보상용차, 영국 스포츠카 로터스, 말레이시아 프로톤 등을 사들인 데 이어 지난해엔 메르세데스벤츠, 다임러트럭, 다임러밴, 다임러버스 등을 산하에 둔 독일 다임러의 최대 주주가 됐는데요. 최근엔 다임러의 소형차 브랜드인 ‘스마트(Smart)’ 지분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리차가 다임러로부터 스마트 지분 절반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지리차는 다음달 열리는 상하이모터쇼 이전에 협상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리차와 다임러는 작년부터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요. 지난해 2월 지리차는 90억달러(약 10조2000억원)를 들여 다임러 지분 9.69%를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됐습니다. 당시 지분 매입액은 중국 자동차 업계의 해외 자동차 기업 지분 매입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두 회사는 절반씩 출자하는 합작사를 설립해 중국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 사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는 스위스 시계 업체 스와치와 다임러가 의기 투합해 설립한 소형차 브랜드인데요. 다임러의 지분 매각은 계속된 판매 부진으로 스마트의 적자가 쌓이자 최대 주주의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FT는 “다임러가 스마트의 수익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설립 이후 줄곧 수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트의 연간 판매량은 13만대에 불과하다”고 전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에버코어ISI는 스마트의 손실 규모가 연간 5억~7억유로(약 6400억~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다임러가 스마트 지분 50%를 지리에 넘기면 그만큼 손실 부담을 덜게 되는 셈이지요.
독일 다임러의 소형차 브랜드 '스마트(Smart)'
독일 다임러의 소형차 브랜드 '스마트(Smart)'
스마트의 미래는 다임러가 지난해 디터 제체 회장의 퇴진을 발표하면서 의문에 휩싸였습니다. 독일 현지에선 오는 5월 제체 회장의 퇴임을 앞두고 스마트 브랜드의 퇴출 가능성마저 제기됐지요. 제체 회장과 달리 후임인 올라 칼레니우스는 소형차에 대한 열정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임러는 2020년까지 스마트를 완전한 전기자동차 브랜드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진출을 위해서는 지리차와 손을 잡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지분 매각 협상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지분 매각 과정에서 독일 정치권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관련 사안에 정통한 한 금융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 독일의 산업계에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지난해 지리차가 다임러의 지분을 매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습니다.

독일 의회는 방위산업, 에너지 등 민감한 산업 분야에서 비유럽(EU) 국가 기업이 지분 15% 이상을 인수하려는 경우 정부가 이를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초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경기 둔화로 중국에서 자동차 판매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요. 지난해 판매량은 2808만대에 그쳐 전년보다 2.8% 감소했습니다.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은 1990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까지 판매량은 333만대에 그쳐 작년 같은 기간보다 9.8% 감소했습니다.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면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물론 중국 자동차 업체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지리차의 공격적인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주목됩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