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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가 언급한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실행하면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현실적인 방안을 찾고 싶다“

일본 도쿄신문에 언급된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발언입니다. 한·일 관계가 경색되고 있고, 양국 정치권에서 험한 말이 오간지 오래됐지만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는 한·일 양국의 경제·문화 교류상이 반영된 반응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12일 일본 의회에서 한국의 징용피해 소송에서 배상 명령을 받은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와 관련해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의 정지, 비자의 발급 정지라든지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한 여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판결이 나온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한국에 대한 ‘대항조치’를 언급한 사례는 적지 않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복조치로 한국에 대한 송금 정지와 비자 발급 정지를 언급한 것은 아소 부총리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소 부총리는 “(한국과)협상을 하고 있는 만큼 그렇게 되기(보복조치가 실행되기)전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해 나가야 한다”며 “보복 조치가 실시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기업에) 실제로 피해가 좀 더 나오면 다른 단계가 될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사태 추이를 보아가며 일본 측이 단계적으로 대응 강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지난주 지지통신은 한국인 징용피해 소송 원고 측이 일본 피고 기업의 한국 내 압류자산을 매각하면 일본 정부가 ‘관세 인상’ 등으로 맞대응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등이 압류돼 매각될 경우, 보복 관세와 전략물자를 포함한 일부 일본제품의 공급정지, 비자발급 제한 등 100개 안팎의 보복조처 목록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물질 중 하나인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르화수소)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자는 목소리도 새나오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조용 고품질 불화수소는 필요 물량의 거의 전부를 일본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닛테쓰스미킨(옛 신일본제철) 피해자 변호인단은 신닛테쓰스미킨이 보유한 포스코와의 합작법인 주식 압류 절차까지 진행했지만 아직 현금화를 위한 경매 절차는 밟지 않은 상태입니다.

외교가와 경제계에선 아소 부총리가 발언한 비자발급과 송금 중단의 내용이 애매모호한 점이 많다며 구체적인 내용 파악에 분주한 상황입니다.

다만 일본이 일방적으로 이 같은 ‘보복조치’를 취하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습니다. ‘교전국’이나 ‘적대국’에 준할 정도로 강경한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자문제와 관련해선 전면적인 비자발급 중지나 기존에 유학·취업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에 대한 비자취소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에 대해선 무비자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데 무비자가 철폐되거나 출입국 심사가 강화되는 등의 조치는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신규 유학·취업 비자 발급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한국이란 국가를 특정해 출입국 심사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고,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입장에서 한국 관광객의 출입국 심사를 강화하는 카드를 쓸 것인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아소 부총리가 언급한 ‘송금 중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의 송금을 말하는 것인지, 송금 규모 기준은 있는지, 정지 기간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얼마나 정지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실제 양국 간 송금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기 보다는 한국에 대한 ‘경고용’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일본 정치권이 한국에 대해 날선 비판과 공격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양국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까닭에 일본 측도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양국 정부가 무의미한 감정적 대립을 지양하고, 현명한 관계개선의 길로 접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