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로켓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베트남 전쟁 유령들이 떠돌고 있다. 두 정상의 회담 장소가 하노이로 결정되면서 노벨평화상의 망령이 그 뒤에 맴도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보낸 편지의 ‘가장 아름다운 복사본’을 자신에게 줬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아베 총리가 자신을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공로를 인정해 노벨상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고 믿고 있다. 작년에도 최소한 두 명의 노르웨이 법률가가 트럼프 대통령을 후보로 추천했다.

UPI통신은 북한 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고 띄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김정은과 아마 공동 수상을 하게 될 것이다. 1973년에 (베트남전쟁을 끝낸 공을 인정받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레득토 베트남 정치국원이 함께 수상자로 지명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두 사람은 협상을 통해 파리평화협정과 종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런 역사가 어떤 뒷이야기를 남겼는지 끝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3년 노벨평화상이 발표되었을 때 세계 각국에서는 키신저를 향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두 명의 노벨위원회 위원이 스스로 물러났다. 키신저는 수상 수락 연설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연설을 하러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갔다가 엄청난 시위대를 만나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게 그러하다. 만약 트럼프와 김정은 두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식으로 역사가 반복된다면 우리는 비슷한 양상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김정은보다 트럼프의 도덕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베트남과의 협상 과정에서 키신저의 목표는 미국이 남베트남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잘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회고록에서 키신저는 솔직하게 그 시기를 “대격변의 날들”로 묘사했다.

키신저는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을 때를 “내 생애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회고록에 따르면 키신저는 그 상을 받던 바로 그 순간에 노벨상 수상 배경인 파리평화협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73년 (남베트남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점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고 그는 회고록에 적었다. 키신저는 “북베트남(월맹)의 침공이 평화협정을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고 썼다.

노벨상 수상 18개월 뒤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은 북베트남 손에 떨어졌다. 1975년 4월 공산주의자들의 탱크가 사이공의 대통령궁 철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키신저는 노벨위원회에 편지를 보냈다. 그는 무력에 의해 거꾸러진 평화를 언급하며 “명예를 위하여 상을 반납코자 한다”고 밝혔다. (레득토는 이미 수상을 거부했다.)

1973년과 지금 상황을 이어주는 것은 노벨상이 아니다. 2000년 노벨위원회는 한 때 반(反) 정부 인사였다가 대통령으로 뽑힌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가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시작한 공로를 인정해서였다. 하지만 2003년 그가 남북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평양에 거액을 송금했고, 결국 그 상을 돈 주고 산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 제기돼 노벨상의 가치는 훼손됐다.

협상을 깨고 나간 사람에게 노벨상을 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어쩌면 협상을 깬 쪽에 노벨상을 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1986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에서 두 사람이 결론에 이르렀을 때를 돌이켜보라. 당시엔 회담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둘은 협상 타결에 굉장히 근접했지만 레이건이 미국의 전략방어 정책을 폐기하라는 고르바초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최종적으로 타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레이건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기로 배짱 큰 결정을 했기 때문에 옛 소련은 냉전을 끝내기 위한 ‘진짜 협상’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무장이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을 막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받는 것, 그래서 어깨를 으쓱이며 오슬로의 세계적인 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은 ‘진짜로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결정하도록 김정은을 유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트남 정상회담의 장소와 노벨상의 슬픈 역사는 이들을 위한 교훈을 준다. 공산주의 체제가 거의 다 사라졌지만 베트남과 북한은 확고하게 공산주의자들이 통치하는 나라다.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순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주변을 좀 둘러본다면 하노이가 한때 미국이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자유 남베트남을 집어삼킨 공산주의 국가의 수도이며, 그 존재 자체로서 1973년 노벨평화상의 가식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노벨상의 저주를 불러들이지 않고도 그가 김정은과 협상할 카드를 여럿 쥐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원제=A Nobel Prize for Trump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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