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세계은행 총재(사진)가 임기를 3년여 남겨두고 사임 의사를 밝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했던 2012년 임명된 김 총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 정부와 여러 현안에서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사임 배경을 놓고 무성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총재는 7일(현지시간) 이사회에서 다음달 1일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성명을 통해 “극심한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사명에 헌신하는 열정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기관의 총재로 일한 것은 큰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최초로 세계은행 총재로 선임된 김 총재는 2016년 연임에 성공해 2017년 7월1일부터 5년 임기를 새로 시작했다.

김 총재는 사임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춘 민간 기업에 합류할 것”이라며 “예상치 못한 기회지만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와 신흥시장의 인프라 부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국제기구에 공공연한 거부감을 드러낸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세계은행이 중국과 같은 곳에 불필요한 대출을 해 준다고 비판했다.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에서도 미국과 충돌했다. 영국 BBC 방송은 “세계은행이 미국 석탄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석탄 발전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예산 긴축과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대한 세계은행 내부 반발도 있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김 총재의 후임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 클 것으로 외신들은 예상했다. 세계은행은 1945년 설립 이래 줄곧 미국 정부가 지명한 미국인이 수장을 맡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이 지명한 후보자를 거부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 총재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아이오와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하버드대에서 의학·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