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소니는 지난 10년간 준비가 부족했다. (성장을 위해서는) 데이터 확보가 최우선이다.”

지난 2월 일본 대표 기업 소니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郞)는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 동안 겪은 침체기의 원인을 준비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네트워크 활성화와 택시호출 서비스, 핀테크(금융기술) 등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가전 회사로 시작한 소니는 현재 음악, 영화, 게임 등 복합 콘텐츠 회사로 발돋움했고 향후 데이터 기반 서비스도 본격화한다.

최고재무관리자(CFO)가 CEO 자리에 오르는 사례가 드물지 않지만 소니에서는 요시다가 처음이다. 역대 7명의 CEO는 창업자거나 그 가족 또는 외부에서 발탁한 인사였다. 그가 선임된 가장 큰 이유는 히라이 가즈오 회장이 CEO로 재직할 당시 실적 부진에 빠졌던 소니를 함께 부활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요시다 CEO 선임에 대해 “부활에 성공한 소니가 앞으로 성장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성실한 모범생 CEO

요시다 CEO는 “취미가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업무에 집중하는 성격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다. CEO로 선임된 지난 2월 기자회견에 그는 감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 화려한 핑크색 넥타이를 즐겨 착용한 히라이 전 CEO와 다른 면모다. ‘재무통’답게 투자 결정 회의에서 마지막까지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 소액 투자 안건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를 제대로 검증했는지 세부 사항까지 계속 질문하곤 한다.

지난해 말 최고 이익을 낸 뒤 소니 전 직원이 기뻐했을 때도 그는 평소처럼 미간의 주름을 펴지 않았다. 늘 엄숙한 분위기 그대로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에 무엇이 있을지 질문하라”며 “지금이 그래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를 오래 알아온 지인은 사실은 밝은 사람인데 책임감에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요시다 CEO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모범생 CEO답게 단기 성과와 주가에 매몰되지 않고 착실하게 성장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소니의 주력인) 게임산업도 2020년까지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웅크리는 것은 다시 일어난다는 뜻이므로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1983년 소니에 입사한 뒤 전략과 재무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05년 소넷(소니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스) 사장으로 선임돼 회사를 떠났다가 2013년 다시 돌아왔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히라이 회장의 부탁을 듣고서다. 요시다는 “독립하고 싶어 회사를 떠났으나 신세를 졌다는 생각에 회사에 보답하고 싶어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요시다 CEO의 신중함은 때로는 선배 경영인들의 과감한 도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를 듣는다.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던 패기를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한 뒤 주가가 떨어져 거센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보수적인 실적 전망을 해오던 그의 습관이 부른 화였다. 요시다는 시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영업이익 대신 3년간 누적 영업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현재까지 요시다가 보여주는 소니는 창사 이래 최고 이익을 달성하고 있어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콘텐츠 사업 영역 확장

소니는 2분기 연속 최고 이익을 경신했다. 일본 회계연도 기준 올해 상반기(4~9월)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9% 증가한 3994억엔으로 나타났다. 매출은 같은 기간 5.5% 늘어난 4조1363억엔, 영업이익은 20% 증가한 4345억엔을 기록했다.

최근 소니 실적 호조의 1등 공신은 게임, 영상, 애니메이션, 음악 등 4개 분야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워너뮤직 등 메이저 음반사의 저작권이 기반이다. 소니는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 투자회사 무바달라가 가진 세계적인 음반사 EMI뮤직퍼블리싱 지분 60%를 23억달러에 인수했다. 음악 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약 210만 곡의 음원 권리를 함께 인수해 총 440만여 곡에 대한 저작권을 확보하게 됐다. 또 캐나다 DHX미디어로부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누피 지분 39%를 1억8500만달러에 매입했다.

소니의 침체기는 이제 과거 일이 됐다. 소니는 2003~2014년 주력 분야였던 TV에서 8000억엔의 누적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에는 1958년 도쿄 증시에 상장한 이후 56년 만에 처음으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니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정크)으로 강등하기도 했다.

데이터 기반 서비스도 추구

소니는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도입해 사세 확장을 꾀하고 있다. 지난 2월 5개 택시회사와 함께 인공지능(AI) 기반 호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동차 제조업체 도요타, 차량 공유업체 우버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한다는 목표다. AI로 탑승자 정보와 교통 상황, 날씨 등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효율적인 배차 시스템을 만들어갈 방침이다. 월 8000만 명이 이용하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도 데이터를 기반한 게임 추천 서비스를 도입한다.

요시다 CEO는 “사람에게 저마다 개성이 있듯 회사마다 유전자가 있고 거기에 힘이 있다”며 “소비자에게 더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소니가 주력했던 전자, 엔터테인먼트, 금융사업의 시발점이 모두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최근 힘을 싣고 있는 지식재산권 분야도 마찬가지다. 요시다 CEO의 이 발언은 가전제품 업체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창립 72년 소니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