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재계에 ‘디폴트(채무불이행)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신용등급이 최고 단계인 기업들까지 잇따라 디폴트로 내몰리고 있다. 중국 정부의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정책에다 미·중 통상전쟁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자금난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량기업까지 디폴트 위기 몰려

중국 기업 디폴트 도미노… '신용등급 AAA'까지 쓰러진다
2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기업인 화신에너지(CEFC)그룹의 자회사인 상하이화신국제가 전날 디폴트를 냈다. 이 회사는 당일 만기가 돌아온 21억위안(약 3450억원) 규모의 1년물 기업어음(CP)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했다. 상하이화신국제는 지난 5월과 6월에도 세 차례에 걸쳐 만기가 된 65억위안어치 채권을 갚지 못했다.

화신에너지는 디폴트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음달까지 33억홍콩달러(약 4700억원)의 자산을 매각할 계획이지만 부채를 갚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 회사가 중국 채권시장에서 발행한 채권은 296억위안어치에 이른다.

지난해까지 주로 지방정부 국유기업에 집중됐던 디폴트는 올 들어 민영기업과 증시에 상장된 기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최고등급인 ‘AAA’ 기업들도 디폴트를 내고 있다. 상하이화신국제가 그런 회사다.

지난달에는 상하이증시에 상장된 대형 에너지 기업인 윈타임에너지가 15억위안의 단기 채무를 갚지 못했다. 이 회사의 디폴트 규모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달 말까지 45억9000만위안의 채권 만기가 돌아온다. 화신에너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중국 기업이 발행한 공모채권에서 발생한 디폴트는 165억위안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16년 207억위안의 80% 수준에 육박했다. 사모채권까지 합치면 디폴트 규모는 333억위안으로 작년 수준(365억위안)에 근접했다. 디폴트에 빠진 채권 대부분이 신용등급 AA 이상을 받았다.

SCMP는 2015년 정부 지원을 받아 대량으로 발행한 채권 만기가 내년까지 집중적으로 돌아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디폴트 사태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중국 기업 채권은 7500억위안에 달한다.

◆신용평가사에까지 불똥

중국에서 기업 디폴트 여파는 신용평가사에까지 미치고 있다. 중국 4위 민간 신용평가사 다궁국제는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1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기업 신용등급을 부풀리고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시장 조사업체 윈드에 따르면 다궁국제가 신용평가를 맡은 기업은 2400개로 중국 신용평가 시장의 16.0%에 이른다. 이는 중국 최대 신용평가사인 중청신(30.2%)과 롄허즈신(23.8%), 상하이신세기(16.8%)에 이은 4위다. 올해 초 점증하는 부채 의존을 이유로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강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년 영업정지는 지금까지 중국당국이 금융회사에 내린 가장 강력한 처벌이다.

다궁국제는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신용등급 평가 서비스를 한 채권 발행 기업에 자문 컨설팅을 제공해 고액의 비용을 챙겨왔다. 이는 신평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다궁국제가 당국에 제출한 일부 기업 자료가 부실하거나 조작됐으며 일부 고위급 경영진과 평가위원의 자질이 수준 미달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최근 중국 기업의 디폴트가 급증하는 원인에 신평사의 부실 평가가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본보기로 다궁국제를 손 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