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기업 KPMG의 뉴욕법인은 최근 중국 베이징과 선전, 상하이에서 잇따라 글로벌로케이션서비스(GLES) 설명회를 열었다. 미국에 투자하려는 중국 기업의 문의가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GLES는 다른 나라에 투자할 때 입지, 세제 등을 분석해 최적지를 찾아주는 서비스다. 중국 기업이 인건비 부담이 최소 세 배 이상인 미국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나선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본격화하면서부터다.

“관세는 대성공이다. 세금을 원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달 5일 트윗은 그가 왜 통상전쟁을 시작했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던 법인세율(35%)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21%로 떨어뜨려 기업에 강력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 확대에 초점 맞춘 세금정책

트럼프의 '계산된 전쟁'… 파격 감세에 투자·일자리 美로 몰려
미국의 새로운 세법은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랜덜 크로즈너 시카고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편은 미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려는 목표에 집중했고, 그러기 위한 모든 핵심 요소를 구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크게 낮춘 것뿐만 아니다. 지식재산권 등 해외발생 무형자산 소득(FDII)에 부과하는 세금과 관련해 공제 혜택을 늘린 것도 기업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애플 등 미국 기업의 FDII 중 37.5%를 과세대상에서 공제해주는 것으로, 공제 후 법인세율 21%를 적용하면 13.1%의 저율로 과세하게 된다. 해외 지재권 수입엔 법인세율보다 더 적은 세금을 내게 한 것이다.

미 세무업계 관계자는 “당초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 세율(12.5%)과 같게 하려고 했지만 의회 통과 때 법인세율이 20%에서 21%로 올라가며 FDII 세율이 13.1%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재권 수입이 많은 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세워 무형자산 수입을 남겨놓던 것을 정확히 겨냥해 미국 내로 들여올 유인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세제 개편으로 미국 내 투자는 증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기업의 투자가 지난해보다 11% 늘어난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은 5년간 3500억달러, 인텔은 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통상전쟁 탓에 올해 실적전망이 좋지 않은데도 미 자동차회사들은 10억~12억달러씩 신규 투자할 예정이다.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KPMG의 울리히 슈미츠 GLES담당 전무는 “미국에 대한 투자 문의가 계속 늘고 있다”며 “법인세율은 글로벌 기업의 투자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세율 인하로 미국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인 감세 정책은 국가 간 감세 경쟁을 부를 조짐이다.

나이젤 척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로 세계 각국이 다국적 기업들에서 걷는 세금이 이전보다 최소 1.6%에서 최대 13.5%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글로벌 기업의 미국 투자가 확대되고 이익도 미국법인에 남길 공산이 커져서다. IMF는 세수 손실이 본격화되면 각국이 앞다퉈 법인세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은 이미 법인세율 인하에 나섰다. 중국도 지난 5월 제조업 분야 등의 부가세 세율을 1%포인트 낮췄다.

◆줄잇는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

미국은 3억2000만 명의 인구에다 1인당 국민소득 5만7000달러의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제조업체가 규모의 경제를 갖추려면 미국 시장 개척은 필수”라고 말했다. 막대한 설비투자를 통해 생산한 물량을 미국에서 30% 이상 소화하지 못하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기업에 열려 있던 이런 미국 시장의 문을 닫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관세정책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만 선택적으로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일리노이주 연설에서 “지난 몇 년간 무역에서 연간 8170억달러씩 손해를 봤다”며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돈을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을 잃는다면 글로벌 기업으로선 매출 회복이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해 말 수입 세탁기에 추가 관세 부과가 예고되자 각각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설립한 이유다. 중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애플 아이폰 등을 조립 생산하던 대만 폭스콘도 6월 말 위스콘신주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