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1948년 ‘무상의료’를 도입한 영국의 의료시스템이 재정난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영국 의료보험공단(NHS)이 5일로 설립 70주년을 맞았지만 예산 부족으로 환자 서비스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고령화로 인구가 늘면서 의료 수요가 계속 불어나는데 재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英 '무상의료'의 위기… 고령화로 재정 고갈
가디언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잉글랜드에선 지난해 치과 치료를 위해 6개월 이상 대기자 명단에 오른 어린이가 1498명으로, 3년 전(514명)보다 52% 증가했다. 이들이 지난해 치과 치료를 위해 기다린 기간은 평균 85일로, 2013년보다 15일 늘어났다. 어린이 치과가 드문 바스 지역에선 평균 진료 대기 기간이 253일이나 걸리기도 했다.

치과뿐 아니다. 잉글랜드 내 병원에서 다른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 리스트에 오른 인원은 420만 명(5월 현재)에 달한다. 이 중 3000명가량은 1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올초엔 응급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뒤 네 시간 안에 치료받는 경우가 77%에 그쳤다. 5년 전만 해도 90%를 웃돌았다.

NHS는 병원 외부 처방약 등을 제외한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서비스 예산 중 3분의 1을 보건·의료 부문에 투입하고 있다.

NHS 설립 첫해 140억파운드 수준이었던 보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부 지출은 현재 10배 이상 불어났다. 그런데도 NHS는 지난해 10억파운드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엔 무상의료로 인해 의료 수요가 늘어난 영향도 적지 않다. 국민 1인당 들어가는 의료비는 연간 2273파운드(약 337만원)에 달한다. 가디언은 “당뇨병과 심장질환 등 장기적인 치료를 요하는 노인 인구가 늘면서 NHS에 필요한 재원 규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달 “NHS 예산을 향후 5년간 평균 3.4% 늘려 2023년까지 연 200억파운드(약 29조원)가량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NHS 예산은 1140억파운드(약 169조원)였다.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EU) 탈퇴로 EU 분담금을 내지 않는 등 재원에 여유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NHS에 활용할 계획이지만 증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