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유민주당은 1955년 창당 이래 4년을 제외하고 지금껏 줄곧 집권해오고 있다. 사실상 ‘1당 독재’라는 비판도 있지만 ‘55년 체제’ 혹은 전지전능한 정당이라는 뜻의 ‘올마이티 파티’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日 자민당 59년 집권 비결은 '유연함'… 진보적 의제까지 발빠르게 선점
전문가들은 자민당이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유연함’을 꼽는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분야에서 진보적인 의제까지 흡수하며 외연을 확장해 왔다는 평가다.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최저임금 등을 제도화해 일본의 사회보장 토대를 마련한 것은 자민당의 대표적인 공적으로 꼽힌다. 국민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 최저임금법 모두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집권하던 시기에 제정됐다. 환경 문제에서도 자민당의 대응은 발 빨랐다. 1950년대 미나마타병·이타이이타이병 등 환경오염에 의한 질병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선제적으로 환경 규제를 강화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2년 중·일 수교는 자민당의 외교 노선이 얼마나 유연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미·중 관계가 개선되자 자민당 내부에서는 일본 역시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연스레 반중 정책을 펴오던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는 당내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총재 선거에서 친중파였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승리해 그해 9월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자민당 내부에서 외교 노선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지 않고 당 내부에서 ‘유사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극우’로 알려졌지만 아베 총리도 개혁 정치가 중 하나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 구성한 2차 내각 때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정책을 쓰면서 기업에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최저임금도 지속적으로 올리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병행했다.

자민당이 이처럼 꾸준히 개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내에 여러 파벌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구조가 있었다.

자민당 내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속해 있는 청화정책연구회, 아소 다로 재무상이 속해 있는 지공회 등 7개의 파벌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자민당 내 주요 당직인 간사장, 총무회장, 정무조사회장 자리는 한 파벌이 독점하지 못하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일본 정치권 관계자는 “자민당은 당내 다양한 파벌이 경쟁하는 구조여서 유권자들로선 굳이 다른 정당에 표를 줄 이유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에도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승원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인 한국과 의원내각제인 일본을 직접 비교하긴 쉽지 않지만 장기집권이 가능하도록 자민당이 해 온 개혁 노력은 한국의 보수정당도 참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임락근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