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밤 10시50분께 나온 미·북 정상회담 전격 취소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TV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밤 10시50분께 나온 미·북 정상회담 전격 취소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TV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북 정상회담이 결국 회담 개최 19일 앞두고 무산됐다.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회담 무산을 알리며 보낸 편지에서 미국의 ‘더 크고 강력한’ 핵 무기를 언급하며 위기 국면을 재현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동시에 “정상회담에 대한 마음이 바뀌면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라”고 전해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회담을 다시 열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정상회담 전격 취소와 관련해 “싱가포르로의 이동 및 수송 계획 등을 논의하고자 최근 며칠간 북측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북측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다”며 “미국은 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날 평양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정치적 멍청이’로 매도하며 회담 철회 가능성을 거론한 데 격분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채널은 열려있으나 북한이 변해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소와 협상 복합 메시지 전달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두 가지 메시지를 한꺼번에 내놨다. 김정은 앞으로 쓴 공개 서한에는 △회담 취소 통보와 함께 재개 기대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경고 등 두 가지가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당국자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을 회담 취소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이 훨씬 거대하고 강력하다”며 북한의 핵무기 도발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언젠가는 당신과 만나기를 기대한다”며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전화나 편지를 달라”고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는 앞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 방식과 관련 “물리적으로 단계적 (접근법)이 조금 필요할 지도 모른다”며 단계적 비핵화를 언급하며 협상 여지를 남겼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을 골자로 하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강조해왔다. 북한은 이에 대해 “일방적 비핵화만 원하는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며 회담 보이콧을 언급해 미국의 우려를 샀다. 이 같은 과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속전속결식 비핵화와 단계적 보상이 가능한 비핵화 방안을 협상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회담은 무산됐지만 향후 시간을 갖고 양측이 핵심 이슈인 비핵화에 대해 논의할수 있는 여지는 휠씬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공식 아닌 개인 명의 서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공식 성명이 아닌 개인 명의 서한 형식으로 김정은에게 회담 취소를 알렸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정상회담 취소를 알리는 중요한 내용을 공식 발표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편지로 보냈다는 게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회담 취소를 원하는 것인지, 김정은 측 반응을 보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확실히 이끌어내려 하는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트럼프의 서한을 보면 유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 여러 군데 보인다”며 “특히 ‘우린 이 회담을 북한이 요청했다고 안내받았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수동형으로 처리했다는 건 중간에 누군가 전달자가 있었단 행간을 담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 장관은 “이 역할을 한 건 지금까지의 상황 흐름상 한국 정부였으며, 미국은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운전자론과 중개론에 경계 메시지를 보낸 듯하다”고 덧붙였다.

◆비핵화 논의 계속될 듯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논의는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미국과 북한 모두 시간이 촉박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비핵화 방식을 비롯한 각론을 두고 물밑 협상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미국은 ‘실패한 회담’을 하는 것 보단 ‘회담 취소’라는 실리를 택한 것 같다”며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화 창구는 일부 바뀔 가능성도 있다. 대북 대화창구의 선두였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북한 측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 내용을 언급하며 거친 반응을 보인 데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이미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