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통상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미국 정부에 제시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수출이 많은 한국 반도체기업이 미·중 통상전쟁의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협상 앞두고, 中 "美 반도체 구매 확대"… 한국 반도체 '유탄' 맞나
NYT는 중국 정부가 이날부터 이틀간 워싱턴DC에서 미국과 벌일 2차 통상 협상을 위해 반도체와 콩, 천연가스 등을 포함한 대규모 미국산 제품 구매 계획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내놓은 미국 제품 구매 계획은 최대 2000억달러어치로 미 정부가 축소를 요구한 무역수지 흑자 규모와 같다.

양국 간 통상 협상에서 화해 분위기가 감돌면서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추가 구매 계획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찾은 류허 중국 부총리를 만나 “미·중 관계의 지속 발전을 추진하기 원한다”는 유화적 발언을 했다. 미 정부가 초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대표단에서 뺀 것도 원활한 협상을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상무부 역시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린 미국산 수수의 반덤핑 조사를 중지하기로 했다.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린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수출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중국은 지난해에만 2601억달러(약 281조1420억원)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해 세계 반도체 생산액의 58%를 사용한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다. 지난해 한국이 수출한 979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가운데 중국과 홍콩이 393억달러와 271억달러어치를 각각 사들여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업계에선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데다 수요가 공급을 웃돌고 있어 당장 타격은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호황이 꺾이면 국내 기업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크론은 싱가포르 등에 대규모 메모리 공장을 짓고 있고, 인텔도 작년부터 다시 낸드플래시 생산을 시작한 만큼 중국 업체들이 장기 구매를 약속하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주문형반도체(ASIC), 서버칩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산 구매를 늘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 분야에서 퀄컴 인텔 브로드컴 등 미국 업체들과 경쟁하는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 등 중견 반도체기업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