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갑작스레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로 존폐 위기에 몰린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해 “신속히 사업할 수 있게 하겠다”며 구제할 뜻을 밝혔다. 중국에 대한 통상 압박을 계속 높이던 와중에 나온 돌발 행동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주 중국과의 2차 고위급 협상을 앞두고 있어 화해 기류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돌변… "中 ZTE 사업 재개 돕겠다"
◆ZTE 제재 4주 만에 철회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ZTE가 신속히 다시 사업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협력하고 있다”며 “상무부에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너무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고도 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16일 유엔의 대(對)북한 및 대이란 제재 조치를 위반한 ZTE에 대해 향후 7년간 미국 부품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중국 국유기업인 ZTE는 통신장비업계 세계 4위, 스마트폰업계 세계 9위로 임직원이 7만5000명에 달한다.

지난 1분기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84%를 퀄컴에서 조달하는 등 미국 부품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제재 직후인 지난달 말부터 영업이 중단됐다.

ZTE는 화웨이와 함께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중국의 핵심 기술기업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ZTE 제재는 양국의 핵심 현안이었다. 지난 3~4일 베이징에서 열린 1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서도 중국 측은 ZTE 구제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ZTE에 강력한 제재를 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의) 놀랄 만한 개입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ZTE 제재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폴 트리올로 유라시아그룹 연구원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ZTE가 망한다면 많은 중국 도시에서 아이폰이 불타는 걸 보게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ZTE는 “지난해 퀄컴, 브로드컴,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211개 미국 기업과 거래했으며 거래액은 23억달러(약 2조4500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모종의 합의? 협상전략?

미·중 양국은 통상전쟁 출구를 찾기 위해 이번주에 2차 고위급 협상을 이어간다. 류허(劉鶴)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이 15~19일 워싱턴을 방문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차 협상에서 ZTE 논의가 속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전략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알루미늄에서도 일방적으로 관세를 발표한 뒤 협상을 통해 각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

ZTE 구제책이 구체적으로 발표된 것도 아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으로 혼란이 생기자 ‘상무부가 ZTE 문제를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