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격화하고 있는 통상전쟁을 해결하기 위한 담판에 들어갔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 경제·통상분야 수장으로 구성된 미국 대표단은 3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경제팀과 협상을 시작했다.

양측은 무역 불균형 문제와 중국의 하이테크산업 육성책,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놓고 팽팽히 맞섰다. 4일까지 이어지는 협상에서 양측이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입장 차이만 드러난 첫날 협상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경제팀을 총출동시켰다. 므누신 장관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래리 커들로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모두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로 꼽히는 류 부총리와 중산 상무부 장관, 류쿤 재정부 장관 등을 내세웠다. 시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사실상 배후에서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경제팀은 두 가지를 핵심 사항으로 제시했다. 연간 375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대(對)미국 무역흑자 중 최소 1000억달러(약 107조원)를 줄일 것과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중국 정부의 지원책(중국제조 2025)을 억제하라는 것이다. 미국 측은 “이들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의지가 강하다”며 중국 정부의 신속한 해결을 주문했다.

중국은 무역 불균형은 불공정한 거래가 아니라 저축률 차이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인은 가계소득의 약 40%를 저축하는 반면 미국인은 소득 대부분을 소비하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늘었다고 반박했다. 또 ‘중국제조 2025’와 같은 산업 정책은 독일 등도 시행하고 있다며 “미국의 요구는 중국의 경제 발전과 기술 진보를 막으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미·중 통상전쟁이 쉽게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고위 관료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중국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른바 ‘시진핑의 딜레마’가 양국 간 합의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글로벌 시장경제 표준을 지키라는 미국의 압력과 중국 방식의 사회주의 비전 실현을 요구하는 중국 내 여론 사이에서 시 주석의 운신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WSJ는 “시 주석이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진 상황에서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중국 내에서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美, 화웨이·ZTE 스마트폰 제한

중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기술·통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새로운 압박 수단을 꺼내들었다. WSJ는 2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모든 공공기관에서 중국산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검토 중이며 곧 발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산 제품이 해킹이나 스파이 행위 등에 악용돼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중국 1위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와 세계 4위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ZTE의 미국 내 판매가 제한된다.

이와 별도로 미 국방부는 이날 성명에서 “화웨이와 ZTE 기기는 장병들과 정보, 임무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며 미국은 물론 세계 미군기지에서 이들 업체가 제조한 휴대폰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업체의 기기를 사용할 경우 장병들은 물론 기지의 위치가 추적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상무부는 북한과 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ZTE가 7년간 미 기업과 부품 거래를 못하도록 막았다. 법무부는 화웨이가 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달 17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연방 보조금 지원을 차단하는 방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베이징=강동균/뉴욕=김현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