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관여하는'레벨3'까지 적용
보험가입·블랙박스 설치 의무화
기술적 결함 때만 제조사가 배상
'레벨4~5' 책임 소재는 추후 검토

각국 안전·책임 규정마련 분주
독일도 블랙박스 탑재 의무화
美선 별도 운전면허 취득 추진
일본 정부가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을 원칙적으로 차량 운전자(운전석 탑승자)에게 묻기로 했다. ‘제조사 책임이냐, 운전자 책임이냐’ 논란에서 제조사 편을 들어준 것이다. 지난달 미국에서 우버와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사고로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나온 조치다. 독일도 지난해 일본과 비슷한 원칙을 정했다.

◆日 “기본적으로 운전자 책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 회의에서 ‘자율주행 관련 제도정비 개요(개정안 초안)’를 마련했다. 전문가 논의와 보완을 거쳐 내년에 정식으로 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 초안은 운전자가 있는 상태에서 조건부로 자율주행하는 ‘레벨3’ 단계까지의 자율주행차 사고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차량 운전자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현재 일반 자동차 사고에 적용되는 원칙과 같다. 차량 제조사는 자동차 시스템에 명백한 결함이 있을 때만 책임을 지고, 외부 해킹으로 인한 사고는 정부가 보상한다. 운전자가 운전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레벨4’나 완전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5’ 수준에서 사고 처리를 어떻게 할지는 향후 검토하기로 했다.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되면 자율주행차 제조사는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자동차업계는 그동안 “제조사에 과도한 책임을 물리면 자율주행차 개발이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일본 정부는 자율주행차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제조사 부담을 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자율주행차 운전자의 부담은 커지게 됐다. 자율주행 모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서도 직접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고려해 자율주행차 운전자에 대해서도 일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손해배상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할 방침이다. 블랙박스 등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운전기록 장치 설치도 의무화한다. 사고 발생 시 보험사가 과실비율을 산정하거나 경찰이 사고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운전기록장치에는 위치 정보와 핸들, 자율주행 시스템의 가동 상황이 기록된다.

일본 정부는 2020~2025년에 자국 내에서 자율주행차가 본격 보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비해 자율주행 기반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국 주요 도로를 자율주행 난이도에 따라 5단계로 등급화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교통량과 신호등·건널목 개수, 우회전 포함 여부 등을 파악해 자율주행 환경의 난이도를 구분했다.
"자율주행車 사고 땐 운전자 책임"… 제조사 손 들어준 日

◆독일도 일본과 유사, 한국은 규정 없어

독일도 지난해 5월 법 개정을 통해 자율주행차에 블랙박스 탑재를 의무화했다. 사고 발생 시 블랙박스 기록을 분석해 자율주행시스템 오류가 발견되면 제조사가 책임을 진다. 하지만 자율주행 수준과 상관없이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국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고려한 조치다. 이에 대해 “결국 운전자가 사고 책임 대부분을 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영국은 사고에 따라 제조사와 운전자의 과실 비율을 다르게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1년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월 로봇에 ‘전자인간’의 지위를 부여하는 ‘로봇시민법’ 결의안을 채택했다. 로봇시민법이 개정되면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은 제조사(자율주행시스템)에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다. 운전자가 운전 상황을 점검하는 ‘레벨3’ 단계까지는 일반 교통법규에 준해 사고 책임을 가린다.

하지만 운전자가 실시간으로 운전 상황을 점검하지 않는 ‘레벨4’부터는 규정이 모호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레벨4’나 ‘레벨5’ 단계에선 자율주행의 안전 책임을 제조사에 묻되, 운전자에게 별도의 면허를 취득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까지 운전자가 탑승하는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입법 논의의 진전이 없다. 사고 책임을 물을 기준인 자율주행 단계도 구분이 안된 상태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주용석 기자 kimdw@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