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의전' 하루 만에 등 돌린 미·중 정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황제대접’을 하면서 연출된 두 정상 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하루 만에 반전했다. 이들 정상은 1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 다낭을 나란히 방문해 서로의 무역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역내 기업인들이 참석한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서 “무역 불균형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어떤 국가와도 양자협정을 맺을 준비가 돼 있다”며 공정하고 호혜적인 교역을 주장했다. 지식재산권 도둑질도 벌어지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21개 APEC 회원국 가운데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최대 불공정 무역국이다. 미국은 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불공정하다며 개정 협상에 나섰고 멕시코, 캐나다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도 하고 있다.

방중 기간 중국으로부터 2535억달러(약 283조원) 규모의 거래를 따내고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트럼프 대통령이 APEC 무대에선 다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나온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손을 묶는 다자 무역협정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무역 질서’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시 주석은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를 겨냥했다.

시 주석은 이어 “개발도상국들이 국제 교역과 투자로부터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다자간 무역체제를 지지하고 개방적 지역주의를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FTA들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 무역체제에서 이탈하는 미국의 공백을 중국이 세계 통상 무대의 주도권을 잡는 기회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APEC 회원국 대부분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하는 만큼 중국의 입지가 지금보다 넓어질 여지가 생긴 것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