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홍콩 경제는 홍콩에서 성장한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과 아편전쟁 때부터 거물이었던 자딘매디슨그룹 등이 지배하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홍콩 경제의 지배 세력은 중국 기업들이다. 청쿵그룹 등이 여전히 건재하기는 하지만 금융·부동산 등의 분야는 중국 본토 기업에 완전히 장악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홍콩 증시에 상장했거나 상장할 예정인 기업의 자문을 맡은 은행 상위 10곳 중 9곳은 중국계다. 건설은행, 하이퉁증권, 농업은행 등이다. 1997년엔 10곳 중 10곳이 모두 모건스탠리, HSBC, 메릴린치 등 글로벌 금융회사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의 관문’ 노릇을 하는 홍콩에서 금융서비스 부문이 전체 경제의 18%를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적지 않은 변화다.

부동산 개발을 주도하는 것도 중국이다. 올해 홍콩 정부가 주거 지역 조성을 위해 개발하기로 한 땅은 하이난항공(HNA)그룹 계열사와 로건부동산홀딩스 등 중국계 부동산 개발업체에 돌아갔다. 헨더슨토지개발 등 홍콩계 시행사는 한 건도 따내지 못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홍콩 기업’의 영향력은 점점 쇠퇴하고 있다. 통신사 차이나텔레콤은 이달 중 홍콩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해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홍콩의 주요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사들였다. 마 회장은 SCMP 인수 배경에 대해 “서구적인 시각 대신 중국의 시각을 더 보여주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이 점점 치고 들어오면서 홍콩 기업은 해외에서 살 길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년 전 청쿵그룹의 최대 계열사였던 허치슨왐포아의 이익은 69%가 홍콩에서 나왔지만, 지금 최대 회사 CK허치슨은 이익의 3%만 홍콩에서 내고 나머지는 유럽·호주 등에서 올리고 있다. 홍콩의 코어퍼시픽 야마이치인터내셔널 소속 캐스터 팡 리서치부문장은 “홍콩 현지 재벌들에 (해외 진출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