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헤지펀드 전성시대…"한국 기업 눈뜨고 다 뺏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표 기업의 외국인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작년 하반기 이후 외국인이 한국 대표 기업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국내 증시를 이끌어온 결과다. 이 때문에 외국 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지배 문제인 ‘윔블던 현상’이 한국 경제와 증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특정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더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경제 발전 단계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대표적 국가로 분류돼 왔다.

외국 자금도 행동주의 헤지펀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2015년 6월),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선 요구(2016년 10월) 과정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투자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종전의 헤지펀드와 구별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등과 같은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에 피해국과 피해 기업이 겪는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각종 경제정책이 무력화된다. 외국 자본이 금융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경제 주권이 약화된다는 의미와 같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헤지펀드 전성시대…"한국 기업 눈뜨고 다 뺏긴다"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분할, 적대적 M&A, 지배구조 개선, 배당 증대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심해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직접 관철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가 이끄는 트라이언펀드가 주가 정체를 이유로 제왕적 CEO의 상징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를 쫓아냈다. 비슷한 이유로 마리오 롱기 US스틸 CEO, 마크 필즈 포드자동차 CEO도 해임됐다.

헤지펀드가 이사회 자리를 확보하면서 CEO의 역할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한때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한 비율(미국 상장회사 기준)이 50%를 넘었지만 최근에는 한 자릿 수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기업 공개(IPO)를 꺼리거나 차등의결권 도입 등을 통해 경영권 방어에 적극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출범 4개월이 지나면서 트럼프 정부가 지향하는 대외정책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이원적 전략’이다. 무역과 통상은 ‘보호주의’를 추구해 미국 경제 고질병인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융은 자본을 매개로 미국의 국익과 세력 확장을 꾀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부활시키려는 의도가 감지된다.

금융위기 이후 위축된 미국의 금융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풀어 자본과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시장, 그리고 시장 참가자가 뛰놀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야심작인 ‘도드 프랭크법’을 수정 보완할 것을 명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가 끝나자마자 부진한 도드 프랭크법 폐지를 가시화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석 중인 Fed 이사를 이 법에 반대하는 인사로 임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도드 프랭크법과 ‘볼커룰’이 폐지되면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헤지펀드가 ‘제2의 전성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여건에서 문재인 정부가 윔블던 현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면서 노무현 정부의 최대 대외 과제였던 ‘동북아 금융허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비롯한 각종 헤지펀드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주인 정신(애국심)’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외자 선호 정책이 여전하다. 우리 국민 사이에도 ‘외국’이란 접두어만 붙으면 국내에서 공부하고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보다 우대하는 풍토가 남아 있다. 외환위기 잔재인 이런 역차별 요소가 사라지지 않으면 외국 자본으로부터의 최후 보루인 국민의 가치판단이 무너진다. 그때는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제도적으로는 ‘규제 왕국’이다. 특히 금융과 기업 분야가 심하다. 더 강한 ‘정신력(수익 추구)’과 ‘전투력(규제 완화)’을 갖춘 외국 자본은 몰려오는데, 이를 방어해야 할 한국 기업에 ‘창과 방패(경영권 보호 장치)’를 내려놓게 하면 눈 뜨고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먹힌다. 상법 개정 등에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