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선진국에선 정치적 리더들이 이념적 차이와 당파성을 초월해 인재를 고르게 활용하는 관례가 오래전부터 정착돼 오고 있다. 편가르기를 넘어 정치적 화합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전문성을 갖춘 인재풀까지 확대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이 좋은 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같은 당내 다른 파벌뿐 아니라 상대 정당 출신까지 장관으로 임명하는 전통이 있다.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중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이 공화당 내 정적 윌리엄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최근 사례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2009년 1월 취임한 오바마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국무장관 임명)은 물론이고 두 명의 공화당 출신 장관까지 초대 내각에 기용했다.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던 로버트 게이츠를 국방장관으로 유임시켰고, 교통장관에 공화당 소속 레이 라후드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을 임명했다. 당시 이라크·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이던 상황을 감안해 국방 업무를 원활하게 인수인계하고 내각 구성의 다양성도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 다음에도 2013년 공화당 출신인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초당적 인사’ 행보를 이어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도 정부마다 다양한 형태의 탕평인사를 해왔다. 가깝게는 지난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찬성 결정 직후 신임 테리사 메이 총리가 구성한 ‘통합 내각’이 그런 사례다. EU 탈퇴와 잔류를 놓고 국론이 쪼개진 상황에서 브렉시트 찬성 진영(보리스 존슨 외무장관 등)과 반대 진영(필립 해먼드 재무장관 등)을 고르게 포용한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영국을 모두를 위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취임 약속을 지켰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탕평인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항거하다 27년간 감옥살이를 한 만델라는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임 대통령인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를 대리인으로 전격 발탁했다. 데클레르크가 이끄는 국민당(NP) 소속 정치인과 관리 5명도 각료직에 임명했다. 데클레르크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의 비판 대상이었지만 만델라는 남아공을 백인과 흑인이 어울려 사는 다민족 국가로 만들겠다는 대의를 위해 ‘담대한 화해의 인사’를 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