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지진 피해 복구 등 과제 산적…의회 신임투표 통과해야

헌법 개정 국민투표의 압도적 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의 후임에 파올로 젠틸로니(62) 외교장관이 지명됐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11일 낮(현지시간) 로마의 퀴리날레 대통령궁에 젠틸로니 장관을 불러들여 그를 렌치 총리의 뒤를 이을 내각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탈리아는 이로써 렌치 전 총리가 지난 4일 상원 축소와 중앙 정부 권한 강화를 핵심 내용으로 한 개헌 국민투표 직후 출구조사에서 패배가 예고되자 심야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한 지 1주일, 그가 내년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 6일 공식 사퇴한 지 나흘 만에 새로운 총리 후보를 맞이하게 됐다.

언론인 출신의 신임 총리 지명자 젠틸로니는 집권 민주당 소속으로 2001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10월 렌치 내각의 외무장관으로 임명돼 이탈리아의 외교를 이끌었다.

앞서 2006년 5월∼2008년 5월에는 로마노 프로디 내각에서 통신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총리 지명권을 갖고 있는 마타렐라 대통령은 전날 저녁까지 사흘에 걸쳐 렌치 총리의 지난 6일 사퇴로 인한 정국 혼란 수습과 새 총리 인선 등을 논의하기 위해 약 40개의 정당 대표와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전 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들을 만난 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신임 총리를 지명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당면한 일련의 문제점을 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온전히 작동하는 정부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젠틸로니 지명자는 즉시 각 부처의 장관을 인선하는 등 내각 구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 구성이 완료돼 상원과 하원의 신임을 받으면 2차대전 후 공화정이 수립된 뒤 64번째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오는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일정에 맞추기 위한 차원에서 의회의 신임투표는 오는 14일까지는 이뤄질 것으로 이탈리아 언론은 예상하고 있다.

새 내각은 존폐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 3위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를 비롯해 벼랑 끝에 몰린 이탈리아 은행들의 구제, 지난 8월 중부 산간 지역을 강타한 강진으로 인한 피해 복구, 차기 총선을 치르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꼽히는 선거법 개정 관리 등의 시급한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임기는 이론적으로는 차기 총선이 예정된 2018년 2월까지이지만, 개헌 국민투표 부결을 이끈 포퓰리즘 성향의 정당 오성운동, 극우정당 북부동맹을 비롯해 집권 민주당 일각에서도 총선을 앞당겨 치를 것을 주장하고 있어 단축될 소지도 있다.

오성운동의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루이지 디 마이오 하원 부대표는 이날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막대한 봉급과 연금, 혜택을 챙기려 또 다른 정부를 구성하려 하고 있다"며 "이번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이탈리아 민중의 민심을 반영해 즉각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글을 남겨 조기 총선을 재차 압박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년 1월24일로 예정된 현행 선거법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조기 총선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쿰으로 불리는 현행 선거법은 하원 선거에서 40% 이상을 득표한 다수당에 보너스 의석을 부여해 전체의 과반 의석을 보장하고, 1차 투표에서 40%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없으면 결선 투표를 벌이는 방식으로, 다수당에 득표율을 넘어서는 보너스 의석을 주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위헌 심판을 받게 됐다.

한편, 사퇴한 렌치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젠틸로니가 신임 총리로 지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대표,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당 대표 등 야당 지도자들은 "젠틸로니는 렌치의 복사판으로 국민투표에서 렌치에 반대한 민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발해 귀추가 주목된다.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