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포퓰리즘 경계심 탓에 사르코지 탈락한 듯"
피용 '깜짝 1위'…쥐페 대세론도 제동·사르코지는 피용 지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와 함께 유럽에 몰아친 포퓰리즘 돌풍이 프랑스 대선 레이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니콜라 사르코지(61)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프랑스 제1야당인 중도 우파 공화당(LR) 대통령 후보를 뽑는 대선 후보 경선 1차 투표에서 3위에 그치면서 내년 대선 출마가 좌절됐다.

이날 투표에서 각각 1∼2위에 오른 프랑수아 피용(62) 전 총리와 알랭 쥐페(71) 전 총리가 오는 27일 2차 결선 투표를 거쳐 대선 공화당 후보로 결정된다.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실시된 대선 후보 경선 1차 투표에서 92%의 개표 결과 피용 전 총리가 44.2%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쥐페 전 총리는 28.4%로 2위에 올랐고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7%를 기록해 3위로 처졌다.

이는 프랑스 1만228개 투표소 가운데 92% 정도를 개표해 380만여표를 집계한 결과로 이들 세 후보의 최종 순위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쥐페와 함께 양강 구도를 이루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탈락한 것은 극우 포퓰리즘을 경계한 유권자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FP통신은 무슬림, 이주민을 향한 혐오를 자극하는 극우 성향의 선거운동을 벌여온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낙선시키려는 유권자들이 특히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경선에는 사상 처음으로 당원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도 2유로(약 2천500원)를 내고 중도우파 가치를 공유한다고 서명하면 참가할 수 있었다.

AFP통신은 투표에 참여한 많은 사회당 지지자들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집권을 막기 위한 표를 던졌을 것으로 해석했다.

공화당과 함께 프랑스 양대 정당을 이루는 중도 좌파 집권 사회당의 재집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기 회복 지연과 1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잇단 테러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트럼프의 승리로 포퓰리즘 기세를 이어받아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가 집권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이 내년 4월 대선에 나와도 1차 투표에서 공화, 르펜 대표에게 밀려 결선행이 좌절될 것이라는 게 중론일 정도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화당에서 선출되는 대선 후보는 내년 대선에서 르펜 대표와 맞붙을 경우 승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현지 언론은 관측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공화당원에게 인기가 높으나 국민적 인기는 이에 못 미쳐 투표자가 많으면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바 있다.

이날 1차 투표에는 400만명에 가까운 유권자가 몰려 공화당 경선에 대한 큰 관심을 반영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공직과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결선 투표에서 피용 전 총리에게 투표해 달라고 당원들에게 부탁했다.

2012년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에게 패한 사르코지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올랑드 대통령의 인기가 추락하자 2014년 복귀해 대중운동연합(현 공화당) 대표에 당선됐다.

사르코지는 잇단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와 난민 문제에 대한 올랑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며 이민과 테러 문제에서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현직에 있을 당시부터 사치와 허세를 일삼는 '블링블링'(bling-bling, 화려하게 차려입은) 대통령으로 국민의 거부감이 컸다.

또 지난 15일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로부터 5천만 유로(약 630억원)을 받았다는 전달자의 증언이 나오면서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

피용 전 총리는 공화당 대선 주자 지지율 설문조사에서 쥐페와 사르코지에 크게 뒤처졌으나 최근 급상승세를 보이며 1차 투표에서 깜짝 1위로 올랐다.

그는 1981년 27세에 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피용 전 총리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밑에서 여러 차례 장관직을 역임했으며 사르코지 전 정부에서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총리를 지냈다.

그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채무위기가 닥치기 전 이를 경고하기도 했다.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스포츠광인 피용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무원 50만 명을 줄이며 주당 근무시간도 35시간에서 39시간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이민자 수도 최소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쥐페 전 총리는 수십 년간 장관과 총리직을 역임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잇단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로 분열된 프랑스를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쥐페 전 총리는 그동안 줄곧 공화당 대선 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렸으나 1차 투표에서 피용에게 크게 뒤지면서 대세론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파리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장재은 기자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