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연설 '92공식' 인정 가능성 낮아…양안관계 격랑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이 20일 총통에 취임한다.

차이 신임 총통은 이날 타이베이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凱達格蘭)대도 광장에서 제14대 총통 취임식을 하고 정식으로 총통으로서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대만의 첫 여성총통이자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래 중화권 최초의 여성 통치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또 대만 역사상 세 번째 정권교체로 민진당으로서는 8년만의 재집권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은 대만 국립정치대 법학 교수를 지내다 2000년 대륙위원회 주임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입법위원, 행정원 부원장을 거쳐 2008년 민진당 주석에 오른 뒤 지난 1월 대선에서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누르고 압승했다.

차이 신임 총통은 이날 총통부에서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인수인계 절차를 마무리한 뒤 예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천젠런(陳建仁) 부총통과 함께 취임식장에 입장한다.

취임식은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국군 연합의장대의 행진을 시작으로 대만 400년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만의 빛' 퍼포먼스, 대만의 민주화 운동 과정을 담은 '대만 민주행진곡' 순서로 진행된다.

차이 총통의 취임 연설에 이어 1970∼80년대 권위주의 체제 시절 대만 민주화와 독립을 염원하는 저항 가요 '메이리다오'(美麗島)를 합창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취임식에는 대만과 수교한 22개국 중 파라과이, 스와질란드, 마셜군도 등 6개국 원수를 포함해 55개국의 외국 축하 사절과 함께 입법위원, 정부각료, 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랜 골프 친구로 알려진 로널드 커크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위시한 5명의 축하사절을, 일본은 현역 의원 등 252명으로 이뤄진 대규모 사절단을 보냈다.

한국에선 한·대만 의원 친선협회 회장인 조경태 새누리당 의원 등 수명이 취임식에 참석한다.

최대 관심은 차이 총통이 이날 취임연설에서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언급할지 여부다.

양안관계의 향방이 여기에 달려있다.

중국은 대만 새 정부에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근간인 '92공식'을 수용해야 한다고 압박해왔지만, 대만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차이 총통은 마잉주 정부의 친중정책과는 선을 긋고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한 채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만 언론은 차이 총통이 취임사에서 92공식을 인정할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대만독립을 명기해놓은 민진당 강령에 어긋나는데다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들의 뜻과 배치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온건한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차이 총통은 1992년 양안 당국자 간의 회담이 있었던 역사적 사실 자체는 인정하는 방식으로 양안관계의 긴장을 피해 나가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중국이 이를 어떻게 보고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간 중국은 차이 총통의 취임을 앞두고 주요 당국자와 관영매체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수용하라며 압박공세를 펼쳐왔다.

또 대만과 마주한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에 주둔하는 중국 제31집단군이 동남 해안 일대에서 대만 공격을 가상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상륙훈련을 벌였고 이 일대에 '항공모함 살수'로 불리는 '둥펑21D(DF-21D)' 미사일을 배치하기도 했다.

(타이베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jooho@yna.co.kr